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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줌 Mar 12. 2022

역시 돈보다 건강이 중요해

오미크론 잠복기


일주일에 한 번가는  학원에 확진자 발생.


원래 학원가는 요일은 수요일인데 하필 그날, 수업을 화요일로 옮겼다. 거기다가 첫째만 보냈는데 그날은 둘째도 미술을 시켜볼까 해서 테스트로 보낸 날이었다.

 하원길에 선생님은  처음 누나 따라간 학원이 어색한지 울었다고 하셨다.


오늘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딸아이는 상세하게 말해줬다. 학원에서 언니들이 우는 모습이 귀엽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달래줬단다.  선생님은 사탕을 주며 달래주셨다고  어떤 언니는 요그루트를 줬고 어떤 언니는 안아주었다고 한다.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웃을 낭랑 18세 언니들이 둘째를 달래줬다니 수업 방해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간식이라도 사서 보내줘야겠다 하던 그때.


학원에서 선생님이 확진됐다는 전화를 주셨다. 전날 온 학생이 확진됐다고 연락 와서 키트 검사했더니 자가검진키트 양성이라고 하신다. 얼른 두 아이에게 자가검진 키트를 했지만 당장은 음성으로 밖에 안 뜬다


두 놈이나 보내 놓고 그런 일이 생기니 속상하기 이루 말할 수없다. 입던 옷을 고대로 벗어 베란다로 던지고 손발을 씻겼다. 46개월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두 손으로 눈과 코를 비볐을 것이다. 마스크 벗고 요구르트 마시는 것까지 상상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퇴근시간이 된 남편에게 모텔에서 자라고 하고 몇 가지 물건들을 종이백에 넣어 현관밖에 뒀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자가격리.

남편은 둘째 날부터 집이 그립다고 말했고 아이들과 나는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안 걸렸으면 걸리지 않아야 하기에 방과 거실 셋이서 격리인 듯 격리 아닌 생활을 이어갔다.

화장실은 같이 쓰지만 밥은 따로 먹고 잠은 각자 따로 자지만 놀 때는 마스크 쓰고 같이 노는 이상한 조합이지만 이마저도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학교와 어린이집에는 상황을 설명해드리고 주말 전 목금 일단 자가 격리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음성에 무증상이라 등원이 가능한 상황은 '아! 그래서 30만 명까지 돌파했구나'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여하튼 잠복기는 7일이라고 하니 그렇게 자가격리 돌입이다.


친정엄마는 처음 핸드폰 개통한 손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주시는데 아빠는 호텔 같은 곳에 가서 잠을 잔다고 들은 엄마는 바로 나에게 문자 했다.

"정서방은 집에 있니?"

"아니요. 회사요."


집에 없다고 말하면 왜 없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할것 같아 "회사"라고 둘러 됐는데 엄마는 그러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 걸어 어디에 있고 왜 거기에 있는지 설명을 들으셨단다.

남편이 설명하기 전까지는 사기사건 때문에 집에서 쫓겨났는지 알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웃기면서도 '음, 쫓겨날 만도 하지'  싶었다.


주변 사람들이 확진됐다고 하면 "많이 아프니? 어떻게 걸렸니? 지금은 괜찮니? " 정도를 물었는데 내가 상황이 되고 보니 그런 말들은 내가 걸릴 것에 대비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고 "힘들 것 같아~"라는 말은 생각일 뿐이었다.

겪어보니 잠복기는 확진도 아니고 음성도 아닌 초조한 시간들의  나날이라 잠시도 편안한 마음이 아니였다.

 확진자 접촉 4일째 되는 날, 아이들이 무증상에 음성이고 너무 잘 먹고 잘 놀아 우리 식구끼리의 거리두기는 마치기로 했다. 주말 내도록 집에 있을 것은 당연하나 마스크는 벗고 밥도 같이 먹으며 밖에서 3일 동안 숙식을 해결한 남편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화 오셔서 아이는 괜찮냐고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며칠째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씀해주고 계셔서 속 시원하게 말씀드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트레스 받아 죽는지 알았어요" 나도 뒤늦게 남아 확진됐다가 건강을 되찾은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얼마나 힘들었니?" 뒤늦게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한 번씩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는데 그건 다름 아닌 '일과 가족 중에 무엇이 우선일까' 란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선뜻 선택 못 내리지만 형식적으로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아 가족을 선택하는 기분이었다. 아직 내가 하는 일이 날아가거나  가족의 건강 위태중에 하나를 선택할 일이 없어 현실적으로 내가 어느 쪽이 더 가슴 아픈지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이번 자가격리로 사기당한 1억 보다는 역시 5일 정도만 아프고 낫는다고 해도 가족의 건강이 더 속상하단 걸 알게 되었다.


추신:  '돈은 잃었지만 우리 가족은 건강해'로 위안 삼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자, 정말 안 좋은 일들은 연속해서 오는 건가 더한 악재들도 따라오는 건 아닌지 무섭기 시작했다. 다행히 확진자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일일 확진자를 보면서도 조금 안일했던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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