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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줌 Jun 04. 2022

왜 무기력한지 나에게 묻다

재밌는 상상에 빠지다

한 동안 삶의 무의미 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것 같다.

(한 달의 시간)

 보이스피싱으로 생긴 대부업 대출도 갚았고 팔려고 내놓은 상가 계약도 잔금까지 처리한 후였다.

모든 것이 종결로 끝났다.  추가로 해야 할 소송 진행 건에서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빨리 해결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기에 하고 싶을 때 하면 될 뿐이다.

다만 당장은 거들떠보고 싶지 않다.


기분이 계속 가라앉았다. 고민 꺼리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진 상황에서 자꾸만 무기력해져 갔다.

일이 하기 싫어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또 미뤘다.

잠시 나에게 '쉼'을 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일주일을 아무것도 안 하며 오롯이 '자유'를 주었는데도 쫓기는 사람처럼 긴장되고 불안했다.

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즐겁게 해 보자. 마음먹고 맛있는 음식과 여행을 반복했다.

'즐겁다'라는 게 감흥이 안 왔다.


이상하다. 내 마음이 왜 이러지.

 내가 괜찮다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걸까? 싫어증이나 우울증에 걸려버린 걸까?

오는 주문건에 대해서도 '지금은 안될 것 같아요', '다음 주나 가능합니다', '지금은 외출 중이라 상담이 안될 것 같아요' 안된다는 말들로 회피했다. 일하기가 싫었다.

일할 시간에 일을 안 하고 나는 뭐하는고 하면, 딱히 하는 것도 없이 멍하니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시간 가는 것을 무서워하며...' 또 이렇게 하루가 가네.'

그렇게 가장 무서운 건 내가 해놓은 것이 없는데 시간이 간다는 사실이었다.


"일이 하기 싫은 거야?" 나에게 물었다

응.  하기 싫어.

"니 일이 싫은 거야?" 또 되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너무 좋아해.


그러 던 어느 날, 밀린 주문을 처리를 해야겠기에 저녁을 먹고 밤마실 나오 듯 가게로 왔다. 작업 테이블에 앉아서 일하기 시작한 게 오후 8시쯤. 뚝딱뚝딱. 콧노래까지 나왔다. 작업이 끝나니 12시가 넘었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아이들이 뛸때 마냥 투스탭으로 총총거리며 뛰었다. 남들볼까 낯부끄러워서 못 하던걸 그밤엔 한다. 그 만큼 신이난다.


스산한 바람에 저녁 공기가 좋다고 말하던 나는 시간 외 근무를 피한지 2~3년은 되어가는 듯하다. 특별한 날 야간근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의 야간근무가 너무 좋았다. 올빼미 인간에 활력이 돌아온 듯했다.

'그래, 난 내 일이 너무 좋아! 그래 이거야.'라고 느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패턴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내 삶이 뒤죽박죽 엉켜버리고 아이들에게 까지 영향을 준다.

내가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에 늦잠 자고 아이들 학교에 늦고 난 또 늦게 일어나 늦게 자고, 그 생활에 아이들도 밤 11시고 12시까지 같이 놀아버리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밤이 좋은 건 좋더라도 삶의 패턴은 지켜주자. 아쉬워하며 다시 한번 내 일이 싫은 건 아니라고 확신을 남겼다.

그렇다고 내 무기력이 없어진 건 아니어서 종이 하나를 놓고 과거로 돌아가 봤다.


지금은 온전한 내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하루가 빡빡했다. 시간으로만 보면 여유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으로 따진다 해도 일을 시작할 때 7년 전에 비해 지금이 넉넉하다.

여행가는 횟수로도 취미생활도 지금이 더 만족할만한 삶인게 분명하다.

돈도 시간도 있는 나는 왜 허전할까?


길고 길게 왜?라는 질문을 수십 번 던졌다.

결국 내가 찾은 답이 정답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한결 놓이고 편안해졌다. 모유수유를 하며 일을 하던 때 7년 전, 어린이집 보내고 하루 10시간 동안 일을 하던 때 5년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일을 하던 때 4년 전, 두 아이를 케어하며 N 잡러 가 된 지 3년 전, 그리고 모든 근무시간을 줄이고 오로지 방해 없이 하루 7시간 주 5일 근무하는 지금.


나는 24시간 밤낮없이 바쁜 예전보다 여유로워지고 일에 해방 놓을 이가 없는데 왜 이런가. 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렸나 생각한 까닭에 나온 답변은.


과거에 나는 갓 태어난 아이를 보는 육아 속에서 "오. 그거 재밌겠는데?'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서 짜릿하고 뿌듯했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걸 실행에 옮겼다.

그런 머릿속에 즐거운 상상들로 현재 내가. 그리고 내 '일'이란 게 탄생했다.

이런 상품 좋겠다. 상품을 올리고. '잘했어. 고생했어'뿌듯해하는 상황들. 주기적으로 새로운 즐거움이 머릿속에 뿜 뿜 하지만 '시간적으로 여유롭다고 해서 내 머리가 수도꼭지처럼 틀면 왕창  아이디어를 쏟아내주지 않는다'라는 걸 난 간과한 게 아닐까?


그래, 과거의 바쁨과 현재의 바쁨은 달랐다.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삶에서 새로운 상상과 넉넉한 시간 속의 상상. 다른 어떤 것에 충실하게 할 때 가끔 떨어지는 소소한 상상들을  나는 계속해서 나의 일에게 '나에게 즐거움을 다오!'라고 외치고 있었나보다. 즐거운 상상들과 아이디어를 실현해가야만 한다.

그래. 상상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나의 활력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기력감을 깨어줄 즐거운 상상 하나를 잡았다. 다시!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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