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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2. 2022

[너는 나의 우주] ep02. 거룩한 봄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 옆집은 짜장면집인데, 나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검사를 끝내면 꼭 짜장면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산골마을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오면서 제일 먹기 힘든 게 짜장면과 교촌치킨이다. 이 먼 동네까지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킬 수도 없고 교촌치킨은 아예 배달을 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미니웅의 첫 심장소리를 듣던 날에도 그곳에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아주 조금 울었다.     


양수검사를 끝낸 뒤 수액 한 대를 맞느라 회복실에 잠깐 누웠다가 일어났는데, 가방 챙겨 엘리베이터 앞에 섰더니 바로 앞이 신생아실이었다. 별생각 없이 유리문에 붙어섰는데 맙소사, 나는 그렇게 작은 아기를 처음 보았다. 아기가 작다는 건 알았지만 아니, 그렇게 작다니. 


내가 놀란 눈으로 아기들을 바라보자 유리문 안 간호사가 싱긋 웃으며 아기 침대 하나를 내가 보기 쉽도록 방향을 돌려 밀어주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나는 아기를 쳐다보았다. 코를 실룩실룩, 떠지지 않는 눈을 깜박깜박. '김경화님 아기'라는 명찰을 단 아기가 꼬물거렸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확 쏟아져버렸다. 세상에, 남의 아기를 보고 울어버리다니. 눈물이 난 건, 정말이지 아기가 작아서였다. 이렇게 작으면 어쩌지. 이렇게 작은 채로 세상에 덜컥 태어나면 어쩌지. 지나가던 임산부가 낯모르는 아기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아마도 흔한 일이었는지 간호사는 나를 보고 그저 심상하게 웃었다.    

 

짜장면집에 가려다 근처 김밥집에 먼저 들렀다. 김밥 두 줄 먼저 사고 그다음에 짜장면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치즈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메뉴판의 오징어덮밥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짜장면과 오징어덮밥을 두고 잠깐 고민하다가 몰라, 여차하면 오징어덮밥 먹고 그다음에 짜장면까지 먹어버리는 거야, 하면서 오징어덮밥을 시켜버렸다. 오동통 살진 임산부야 보기 좋잖아. 


먹다가, 그 작은 아기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손님이 나뿐인 작은 식당이었다. 아기 얼굴이 떠오르니 코가 시큰해졌고 또 눈물이 났다. 옆에 서서 김밥을 말던 주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맵죠?"


오징어덮밥이 맵긴 했다.


"네. 맵네요."

"코가 빨개지셨어요."


주인 여자의 말에 내가 급하게 웃었다.


"매운데, 그래도 맛있어요."


나는 냅킨을 들어 코를 풀며 오징어덮밥을 다 먹었다. 양파 한 조각, 파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기 때문에 짜장면 생각은 그만 쑥 들어갔다.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내가 사는 산골마을은 초록잎들로 산들이 다 부풀었다. 뭉글뭉글한 구름처럼 푸른 나무들이 따스하게 일렁였고 우리 집 작은 마당에는 꽃이 넘치게도 피었다. 그늘진 뒷마당에도 키 큰 꽃들이 섰다. 봄이 아까웠다. 


오디오 위에 올려두었던 미니웅의 신발을 잠깐 쳐다보았다. 내가 잘못 사긴 한 모양이다. 미니웅도 그렇게 작은 아기로 태어나면 이 신발을 신기 위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거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 누구는 사라지고 누구는 태어나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아직 깨닫지 못했다. 오늘 아침 나는 친구 코린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코트디부아르의 소설가 코린과는 미국 아이오와에서 두 계절을 함께 보냈다. 코린이 그렇게 아기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을 나는 아이오와에서는 미처 몰랐다. 아이오와의 친구들은 이메일로 계속 코린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편지 속에서 매일매일 아기 이야기를 했다는 코린의 모습을 나는 아프게 본다. R.I.P. Rest in Peace. 나는 그 말을 오늘 처음 써보았다. R.I.P 다음에 친구의 이름을 붙이게 될 줄 그동안의 나는 몰랐다. 


모두의 생일과 모두의 장례식에 거룩한 축복이 있었으면 하는 봄이다.



입덧 하나 없이 먹고 싶은 것만 많았던 먹보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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