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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2. 2022

[너는 나의 우주] ep.8_주눅



나는 기업연수 프로그램에 종종 강연을 나간다. 

이번 강연들도 마찬가지, 기업연수 임원 대상 강의다. 어제가 첫 강의였다.


강연 전날에서야 나는 문득, 스탭들에게 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소파에 앉아 곰곰 생각하다가 미니웅 아빠에게 물었다.     


나     연수 받을 때 강사가 임신 중이면 이상해?

그     무슨 말이야?

나     임산부 강사가 나오면 이상하냐고.

그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     그래?     


나는 왜 그딴 질문을 그에게 던졌을까.

내 질문이 나도 이상해 한참 생각했다.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나는 배를 뽈록 내밀고, 임부복을 입고, 임원들 앞에 선 상상을 했다. 나는 왜 주눅이 들었을까. 아니, 그게 주눅이 맞을까.     


나     스탭들한테 임신했단 말을 안 했어.

그     강사가 임신하면 강의를 못해?

나     그냥 좀 이상할 것 같아서.

그     설사,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걸 어떻게 말 로 해? 그런 건 입 밖에 낼 수 없는 소리지.     


나는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났던 숱한 임산부들을 떠올렸다. 아니, 실은 숱할 것도 없다. 나는 임산부들을 그리 만나 본 적이 없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을 면접에서 떨어뜨린 적도 없고 파트너로 만나도 배가 불룩, 뒤뚱거린다 해서 왠지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런 건 입 밖에 낼 수 없는 소리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걸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강연을 앞두고 지레 주눅이 들었을까. 


그래서 어제 강의를 갈 때엔 되도록 티 나지 않는 원피스를 입고 재킷을 걸쳤다. 

몇 번이나 미니웅 아빠에게 물었다. 


"티나? 사람들이 알아보겠어?"

     

물론 나는, 유난 떠는 임산부들을 싫어하긴 했다. 

언젠가 낯모르는 임산부와 둘이 엘리베이터에 탄 적이 있었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어린 꼬마와 엄마가 급하게 들어섰다. 꼬마가 달려오자 임산부는 비명까지 버럭 지르면서 두 팔로 아이의 진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엘리베이터는 무척이나 넓었고 아이가 뛰어봤자 임산부의 배로 돌진할 일도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 제스처만으로 꼬마는 제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아마도 그 엄마는 민망해서 그랬을 것이다. 잘못도 없는 꼬마만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광경이 몹시도 불쾌했다. 유난도 정말…… 그런 생각을 했을 거다.      


입덧으로 고달프고 부른 배 때문에 다리가 아프고 이젠 숨도 차고, 그런 일들은 다 사적인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허리가 아파 죽겠단 말야! 징징거리는 건 가족이나 들어야 할 일이다. 지하철 옆자리 승객에게 내가 임신을 해서 허리가 아프니 좀 주물러봐라, 할 것도 아닌데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노산으로 내가 고달파 죽겠으니 보조금을 좀 내놓아라, 국가에게 요구할 것도 아닌데. 그러니 내가 주눅들 일이 아닌데. 세 시간 강의지만 우리 미니웅이 힘드니 두 시간만 하자, 그럴 턱이 없고 운영진 측에서는 세 시간 강의가 기니 앉아서 하라며 의자도 준비해 주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나는 강의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떠드는 스타일이라 평소대로 했다. 강의가 끝나자 발과 다리가 부어올라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다 까져 있었다.     


강의를 들은 분들은 당연하게도 내가 임산부라고 항의하지 않았고 실망한 눈치도 아니었다. 그냥 나 혼자 지레 그랬던 거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와서까지 내 마음이 영 맹맹했던 건, 바로 나 때문이었을 거다. 


임신을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가 이제 열외에 섰다고 생각했었나. 빡세게 세상 속에 섞이기보다는 아주 사적이고 사소한 일상으로 파묻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었나. 개인적인 행복을 가지는 대신 사회에서 약간 소외되는 것쯤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M은 쌍둥이를 배 속에 넣고 있을 때 한 아기가 발로 치골 신경을 자꾸 내리찍어서 결국 그 통증으로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 신세를 졌다. 며칠 전 미니웅도 발길질을 하다 내 신경이라도 잘못 건드린 건지 나는 그만 다리가 훅 꺾어졌다. 다리에 마비가 올 것 같았다. 얼얼한 통증이 가신 후에야 일어나 내가 말했다. 


“야, 미니웅. 이건 너무하잖아.” 


7개월에 들어서자 이제는 숨도 차온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가고 내가 자라는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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