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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2. 2022

[너는 나의 우주] ep.9_은행원 이모



한 번 유산을 겪었던 여동생은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하자마자 출근도 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저 혼자 분연히 입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왜요?” 


의사가 물었으나 동생은 단호했다. 


“저 입원할래요. 그냥 입원시켜 주세요.” 


다니던 은행에는 그날로 엄마가 대신 가서 휴직계를 제출했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동생은 3년 동안 휴직을 했다. 그리고 복직했다. 


은행에서는 복직을 하게 되면 한동안 서울 본사로 교육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하긴, 쉬는 동안 은행의 업무 시스템도 많이 변동이 있었을 테니 교육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동생도 교육을 받으러 서울에 왔었다. 교육이 끝나고 복직 발령을 받자마자 동생은 두 번째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점장이 나더러 미쳤다고 할 거 같아. 3년 휴직하고, 복직하자마자 또 임신이라니.” 


동생은 들킬 때까지는 임신 사실을 숨기겠다고 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서라도 말을 못하겠단다. 임산부용 유니폼이 있는데도 동생은 그걸 신청하지 않고 버텼다. 자리에 앉으면 꼭 끼는 유니폼 치마가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갔단다. 보다못한 지점장이 “아, 김대리! 그기 뭐꼬? 또 휴직을 하던가 아니면 유니폼을 바꿔 입던가!” 소리를 질렀단다. 남들 다 알아챘는데도 제가 말 안 했으니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거다. 동생은 또 휴직을 했다. 그리고 2년을 쉬었다. 


“진짜 좋은 회사긴 해. 5년을 푸지게 쉬고도 다시 간다니 받아주고 말야.” 


동생이 두 번째 복직을 위해 다시 서울 본사에 와 있을 때 내가 말했다. 동생이 조금 거만하게 대답했다. 


“새로 신입을 뽑아서 교육하는 비용보다 원래 일하던 사람 잠깐 재교육해서 나가는 비용이 훨씬 더 적은 거지. 휴직수당 다 준다 해도 말야. 은행에는 여직원들 많잖아. 여직원들 홀대하면 은행만 손해일걸.” 


또래보다 승진이 빨랐던 동생은 이 속도면 아무래도 최연소 과장도 될 수 있겠다며 설레발을 쳤었는데, 5년을 내리 쉬고 나니 그런 건 다 물 건너갔고 그저 하루빨리 과장으로 승진할 날만 학수고대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결국 과장이 되고야 말았다. 


“야, 언니야. 내가 왜 이렇게 과장이 되고 싶어서 방방 뛰었는 줄 아나? 과장 되면 인제 유니폼 안 입잖아. 내 인제 사복 입고 댕겨도 된다. 내 딴 건 자신 없어도 우리은행 내에서 젤 옷 잘 입는 과장이 될 자신은 있다 아이가.” 


이런 과장 승진 소감 및 각오는 아마 찾기 힘들 거다. 과장이 된 지 몇 년 지났지만 아마 그날의 각오는 그다지 바래지 않았을 거다. 동생은 열심히 쇼핑에 공을 들이고 끊임없이 제 옷차림에 대해 나에게 리뷰를 요구하고 저에게 없는 아이템을 건지기 위해 내 옷장을 뒤지곤 한다.      


허리가 아파서 책상에 앉지도 못하고 소파 테이블에 종이 놓고 사부작사부작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데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버럭버럭 신세한탄이다. 진상 고객 하나가 성질을 돋운 모양이다. 


“아, 진짜! 금감원에서 지시한 거 가지고 왜 내한테 난리냐고.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는 내한테 짜증을 내잖아. 그래서 내가 아, 고객님, 그건 금감원에서 내려온 지시라서 저희도 어쩔 수 없고요, 막 그러는데도 신경질 신경질을 부리고. 내 진짜 드러워서 몬해먹겠다!” 

“그만둬. 이참에 집에 눌러앉어.” 

“야! 그럼 내 옷값은 누가 대는데? 피부과 레이저 비용은 누가 대고? 엄마 공과금 니가 다 내줄 기가? 머리 하나 하면서 신랑한테 미용실 가게 돈 좀 주세요, 해야 되겠나, 내가?” 

“참, 내 산후조리원 예약했어?” 

“아, 맞다. 그거 안 했다. 끊어봐라. 예약하게.” 

“응.” 

“근데 니 조리원을 왜 내가 예약해야 하는지는 내 진짜 모르겠네. 니 진짜 웃긴다. 그걸 왜 내가 하는데?” 

“아, 빨리 해. 쫌.” 

“알았다.” 


동생은 투덜거려도 아마 오래오래 은행을 다닐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동생은 일곱 살, 다섯 살 제 남매들을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단다. 


“니들 이제 열심히 살아야 해. 이모가 결혼한다 안 하나. 그니까 니들은 나중에 이모 유산 같은 건 하나도 몬 받는다. 그건 다 미니웅 꺼야. 니들한텐 쥐뿔도 없어. 쫑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열심히 살자, 어?” 


조카에게 남겨줄 유산은커녕 미니웅한테도 줄 게 쥐뿔 없어서, 미니웅은 이제 유모차도 사주고 카시트도 사주고 세발자전거도 사줄 이모한테 잘 보여야 한다. 이모가 오래오래 은행에 잘 다닐 수 있도록 독려도 하면서 말이다. 일단 산후조리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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