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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an 03. 2022

[우주는 세 살] ep.26_우주 혼났어요



어제는 처음으로 눈물 쏙 빠지게 우주를 혼냈다.

사실 그동안도 혼낼 일 많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아직 너무 어려서 엄마 마음을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땐 엄마한테 걸핏하면 빗자루로 맞았고, 머리통도 쥐어박혔고 등짝도 맞고 그랬다. 내가 그때 엄마의 마음을 의심했었나. 얼마 안 되는 소꿉 살림이랑 인형을 보자기에 싸 들고 집을 나가야지, 마음먹은 적도 있다만 그건 초등학생 이후였던 것 같고. 그땐 이집 저집 두들겨 맞는 애들이 흔해서 딱히 우리 엄마가 이상하단 생각은 안 했다. 물론 엄마도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고 말이다.  

   

다만 그런 생각은 했다.

엄마가 이번 일 때문에 나를 영영 미워하게 되면 어쩌지? 그런 걱정.     

그래서 내가 우주를 혼쭐내기 전 불안했던 두 마음은 이거였다. 

    

1. 아니, 엄마가 나를 혼내? 난 앞으로 엄마를 다신 좋아하지 않을 거야!

2.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너무 슬퍼.     


두 마음 모두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였기 때문에 어제는 몹시 화가 났는데도 한 번 더 참았다. 하지만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우주, 지금 뭐하는 짓이야? 너 지금 도대체 뭘 했어?” 


그러자마자 이 고집쟁이 도도한 27개월 베이비의 입술이 꾸물꾸물,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간해선 눈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우주라 반응이 그렇게 빨리 나올 줄도 몰랐다. 그래도 마음 약해지지 말고 야단을 쳐야지, 마음을 채 먹기도 전에 우주는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것도 아주 꼭. 그렇게 단단하게 내 목을 그러안은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여간해선 팔을 풀지 않을 것 같아 잠깐 기다려준 다음 팔을 떼어내고 우주의 얼굴을 들게 했다.


“우주. 엄마 봐봐. 엄마 얼굴 보고 얘기해.”


반항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내 목을 감은 아기의 두 팔이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야단맞기 싫어서 내 목을 끌어안고 버틴 게 아니라, 아기는 이미 서러웠고, 엄마가 자신을 미워할까 겁을 먹고 있다는 걸 나는 알아버렸다.


반항하지 않고 얼굴을 들고 엄마의 말을 찬찬히 다 들은 다음, 아기는 끄덕였고, 다시 내 목을 단단히 안았다.     

그래서 우주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다리까지 내 허리에 친친 감고 얼굴은 내 어깨에 묻은 채로 우주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10분쯤 지나니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아이고. 무슨 아기가 이렇게 무겁니. 이 꿀돼지야. 나는 방으로 가 침대에 앉았다.


“우주. 이제 엄마 얼굴 다시 볼까?”


그 말에 우주가 팔을 풀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았다.

어쩜. 그렇게 환하게 웃을까.

너무너무 예쁘게.     


우리는 침대에 누워 서로 뽀뽀를 스무 번쯤 해주고 우주는 선심을 썼다. 발도 내밀며 “이거 엄마 꺼.”손도 내밀며 “이거 엄마 꺼.” 그리고 배꼽도 보여주었다. 


“이것도 엄마 꺼야.” 


우리는 소유권을 넘겨줄 때마다 뽀뽀를 해주는데, 그래서 나는 어제 우주의 손과 발, 배꼽과 귀, 머리카락과 팔꿈치에 뽀뽀를 죽도록 해주어야 했다.     


그러고는 둘이 백화점에 가 우주가 제일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그곳에서 감자튀김을 먹을 땐 우주 몫으로 작은 종이컵에 감자튀김을 덜어주는데 우주는 평소 먹던 양의 1.5배를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1층 매장을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커다란 개 인형이 있는 루이비통 매장과 민트색 이쁜 티파니 매장을 제일 좋아해서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유리에 손자국을 냈고, 또 정신없이 뛰다가 지지난 주에 부딪혀 나동그라졌던 시큐리티 직원에게 또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직원이 우주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또 너구나.”     


그렇게 우주와 나는 또 하루를 살았다. 우주가 이담에 중2병에 걸리고 나면 내가 이 이야기를 서글프게 해주어도 흥, 코웃음을 치겠지. 나도 입에서 말이 곱게 나가진 않을 테다. 


“내가 미쳤지. 그땐 니가 뭐라고 그렇게 애면글면했을까?” 


그러면 우주가 “왜? 그냥 패지 그랬어? 지금처럼?” 이러면서 대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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