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대도 난 돌아가지 않을래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가보고 싶은 시절, 되돌리고 싶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별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계속 만남을 이어갔을까? 그곳에 아빠가 있었다면 난 다시 가지 않아.
다시 고딩이 된다면 요즘 애들처럼 편의점에서 알바라도 하며 용돈을 벌 텐데... 그럼 보나마나 엄마는
힘들고 공부해야 한다며 말리겠지만. 내가 좋아했던 아이에게 고백을 한 번쯤은 속 시원히 해보는 건데.
못 이기는 척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글쎄. 그때가 다시 되어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들. 내가 볼 때는 괴기스럽고 오싹한 세계를 펼치는 감독이지만 일각에서는 상상력의
천재라 불리우는 팀 버튼 감독. 그의 신작을 보았다. 바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여기서 왜 페레그린은 미스일까요? 그리고 아이들은 왜 이상할까요? 이런 의문을 가진 채 조금은 겁을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난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공포물이 아니다. 그러나 잔인하고 끔찍하고 유령, 귀신 등이
등장하거나 괴물이 나오면 내게는 심장을 꽉 붙잡아야 하는 공포물이 된다. 늘 영화를 보기 전, '당신의 관점에서 보게 해주세요'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조금이라도 뭔가 튀어나오거나 잔인하거나 무서우면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응시한다.
페레그린은 쉽게 말해 고아원이나 유치원 원장님쯤 되는데, 새로 변신할 수 있고 시간을 재설정하여 영원히 그 시간 안에서 살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을 대단히 사랑하여 그들을 지키는 것이 사명이자 존재 이유이다.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은 다들 특별한, 아니 조금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순식간에 자라게 한다든지 하늘로 붕붕 떠오른다든지 산소를 이용하여 마음껏 물방울을 모은다든지 등등. 나치 밑에서 공습을 당하기 전 미스 패레그린은 급히 시간을 설정하여 공습의 순간에서 아이들을 지켜내고 하루 전으로 시간을 바꾸어 살아간다. 그런데 그 곳의 아이들은 늙지도 다른 삶을 경험할 기회도 없이 그냥 안전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데...
언제나 악은 선을 뒤따르는 걸까? 악당들로부터 그들을 지키기 위해 외부 세계로 간 에이브와 그의 손자 제이크. 그들로 달라지는 결과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 미스 페레그린은 자신보다 아이들을 지키고 돌보는 것에 집중한다.
둘째, 시간을 재설정하여 산다는 것은 가보지도 못한 미래는 맛보지도 않고 그냥 과거에 묻혀 지내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나이지만 나 자신보다 그들의 삶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는 건 가식이자 거짓말. 난 그렇지 못하다. 내 시간과 물질을 어느 정도 그들을 위해 사용하긴 하지만 오로지 나 자신보다도 그들에게 집중한 적은 얼마 안 되니까. 그리고 똑같은 하루가 계속된다는 것은 얼마나 지겨운 일인가? 음식점도 같은 데만 가면 지겹고 노는 것도 늘 같은 종류로만 놀면 식상한데 매일 매일이 같다면 난 사양하겠다.
불안하고 안전이 보장되지 못해도 그것이 인생이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니까 뭐가 뭔지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고 희망도 생기는 게 아닐까? 물론 영화 속 어린이집도 결국은 발각되고 공격을 받고 인형같이 주어진 공간에서 살아가던 아이들도 서로 힘을 모아 악당과 싸워나간다. 아이들이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더욱 좋으련만 늘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들의 희생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나쁜 어른들은 영화나 현실이나 존재하고...
내가 지금 아는 것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욱 더 성숙한 인간으로 엄마 속 덜 썩이고 살았을까? 그럼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없이 지내는 것 같다. 성실한 면도 있지만 여전히 하기 싫은 건 생각하기 귀찮아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어 갈수록 불안한 마음은 커지고 이제는 열정과 꿈이라는 단어보다 그냥 일상에 마비되어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두려움도 밀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나의 말이나 글을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아참, 시간 설정은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울 때를 내 마음이, 내 기억이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시간으로 직접 들어가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어렵지 않다. 시계를 따로 꺼내어 바늘을 돌릴 필요도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된다. 지금도 우리의 시간은 째깍째깍 잘만 돌아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