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by 윤작가

그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있다. 상자를 하나 놓고 몸이 불편한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모자를 쓰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몸을 흔들며 그렇게 앉아 있다.

어느 할아버지는 집에 차비를 놓고 왔는데 저기 매표소에 가서 표 좀 끊어달라고 낯선 말투로 말을 거셨다.

그런 사람들을 다른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나치는지 알지 못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마음이 괴롭고 불편하다. 도와주자니 그냥 돈 날리는 것 같고, 안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불쌍한 생각도 들기 때문에...

예전에는 그들이 사기꾼이든 아니든 그냥 도와주는 게 좋은 일이라고 꼬박꼬박 천 원을 넣으며 지나가거나 전도지를 넣거나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말도 덧붙이고는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자리에 날마다 있던 사람. 그때는 그를 돕는 손길이 하늘에 계신 신을 만나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차고 있던 시계며 걸치고 있던 잠바를 넣어두기도 했다. 혹시 그가 예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물론 그 속에 신이 거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뚱딴지같고 엉뚱한 동화 속에 살았던 것 다. 낯 모르는 불쌍한 이를 돕는 것이 신을 향한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고 그에게는 한 줌 희망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에 금이 간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전날에 내가 벗어준 잠바를 그가 입고 있고 시계를 찬 것까지는 뭐 감동이라면 감동일 수도 있었는데...


"야, 저런 사람들 뒤에 시키는 사람들이 있어."라는 친구의 말에 화가 났다. 그럼 내가 그에게 베푼 선의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놀아난 거란 말인가?


"그 사람들이 통에 들어온 물건이나 돈을 가져가서... 돈은 자기들이 챙기고 물건은 일부러 지니게 한대. 사람들 계속 끌려고..."


기가 막혔다. 그럼 저 사람은 꼭두각시 마냥 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거네. 나쁜 놈들. 저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먹고 살다니. 충격과 회한에 사로잡힌 나는 그 후로 돈을 넣지 않았다. 그 사람이 불쌍했지만 내 힘으로 구할 수도 없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시계며 옷이며 준 걸 그놈들이 보고 있었던 걸까? 참 더럽게 할 일 없네. 그럴 바에 다른 일을 하지.


"외국처럼 진짜 어려운 사람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그냥 돈 받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돈 안 줘요."


아이들과 남을 도운 경험을 나누다 노숙자에 대해 어떻게 할 건지 물었더니 어느 아이가 저렇게 대답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노숙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차디찬 시선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그냥 시간을 보낸다. 겉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췰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삶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그 긴 시각 같은 자리에서 동냥하며 앉아있을 때 그 수모를 어찌 견디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라도 살겠다는 게 그래, 조금은 다행이고 기특하기도 하다. 아직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아니니까. 뭐라도 먹으려고 살려고 돈을 구하는 거니까. 이런 생각도 든다.


물론 같은 노숙인을 폭행하는 이들은 빼고. 사회 구조와도 연관이 되고 그만큼 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이 세상에 저들에게 천 원을 준다고 큰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저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으니까. 책임지고 노숙인들을 도우려다 돈 내놓으라고 칼에 찔리고 배신당하는 사역자들도 있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저들이 하루 묵을 곳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루 한 끼라도 연명할 돈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무료 급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지만 눈앞에 놓인 저들을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대하는지는 내 문제니까.


"함부로 돕지 마라. 길 가다가 혹 노인이 뭔가 묻거든 잘 모른다고 해라."

어머니의 말씀이다. 사실 안 된 마음에 누군가를 도왔다가 곤란했던 적도 있었으니 현실에 맞는 조언이고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불편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문제는 각자의 선택이고 몫이겠지. 각자 판단한 대로 행동하고 그러면서 살아가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문제인 것을.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차비 하나라도 아껴야 하는 내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도울 수 있는 만큼 돕는다. 그러나 도와서 부담이 되고 곤란해질 때는 참는다. 대신 그를 위한 기도는 드린다.

"하나님, 저는 돈을 못 냈어요. 하지만 그가 굶어 죽지 않게 누군가는 돈을 주기를 바랍니다......."

비겁한 기도라도 지금 결론 내린 바는 그러하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왜 아직도, 왜 아직도, 왜 아직도 이런 걸까? 내 손이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하라고 하는 비겁한 변명, 참 부끄럽고 마음 시리다. 그런 가을이다.


p.s. 답은 성경에 나와 있었다. 단지 실천을 못 했을 뿐...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 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누가복음 6장 30~31, 35,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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