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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l 06. 2017

사람을 대표하는 말

'기모찌'에 관련된 어처구니

그 날도 아이들은 스도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손으로는 문제를 풀지만 눈으로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입으로는 쉴 새없이 수다를 떤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상사들이 단골 소재거리인데 이 단어가 그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경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기모띠!"

"기모띠? 기모띠가 뭐야?"

"몰라요, 애들이 그렇게 얘기해요."

"선생님은 처음 듣는데..."

"애들이 이상한 말이라던데요."

이상한 말이라고 하는 아이의 말에 스마트폰으로 '기모띠'를 검색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이라 알아두고 싶었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 때문이다.


'앙 기모띠’는 ‘기분이 좋다’는 말로 정체불명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일본어 ‘기모치(きもち)’ 앞에 '앙'을 붙이고 ‘기분’을 뜻하는 일본어 ‘기모치(きもち)’를 변형한 ‘기모띠’를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날마다행복73 (다음daum에서 '기모띠'를 검색한 결과, 질문하기에서 발췌)


누군가는 일본어 '기모치'가 '기모띠'로 변형되었는데 그 앞에 '앙'이 붙으면 야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말이 된다고 쓰지 말라고 권유한 글도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우리 아이들이 장난스레 사용하는 단어가 야동 용어라고? 세상에! 아이들과 더 이야기해보니 요즘 아프리카 TV에서 인기 많은 BJ들이 사용해서 더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 사람들이 미쳤나? 자기들 방송 더 인기끌려고 아이들이 보는 데서 무슨 뜻인지 알고 쓴 건지 모르고 쓴 건지. 대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욕설 한 바가지를 그 놈의 해당 BJ에게 날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기모띠' 앞에 '앙'을 붙이면 성적인 용어가 된대. 이건 야동에서 쓰는 말이래.

친구들과 장난스레 하는 말이라도 이 말은 안 쓰는 게 좋겠다. 좋은 의미가 아니네!"

아이들도 그런 뜻인줄은 몰랐는지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라고 이르고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우리 말을 참으로 우습게 여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서글퍼진다.


주간 동아 사회면에 이와 관련된 기사(2016년 3월 11일자)가 있어 인용한다.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 중인 휴먼급식체는 ‘휴먼체’와 ‘급식충’을 합성해 만든 단어로, 전자는 문서작성 프로그램 ‘한컴오피스’의 글꼴명, 후자는 청소년을 급식만 축내는 벌레로 비하하는 유행어다. 정리하자면 휴먼급식체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즉 초중고교생이 널리 쓰는 어투를 속되게 이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휴먼급식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초성만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 예를 들어 ‘ㅇㅈ’은 ‘인정(認定)’의 줄임말이다. ‘ㅂㅂㅂㄱ’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는데 이는 ‘반박불가’의 줄임말이다.
휴먼급식체의 또 다른 특징은 ‘문답’ 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 한참 주장을 펼친 뒤 ‘인정? 어 인정’처럼 자문자답을 하거나, 돌연 부장판사를 등장시켜 ‘부장판사님도 인정? 네 인정합니다(feat. 부장판사)’ 같은 식으로 쓰기도 한다.
휴먼급식체를 쓰는 청소년들은 말끝마다 ‘~각’을 붙이기도 한다. ‘~각’은 ‘~한 상황’ 정도의 의미로, 자주 쓰이는 활용 형태는 ‘자살각’(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 ‘인정각’(인정할 만한 상황) 등이다. ‘앙 기모띠’ 같은 정체불명의 표현도 눈에 띈다. ‘기모띠’는 ‘기분’을 뜻하는 일본어 ‘기모치(きもち)’를 변형한 것으로, ‘앙 기모띠’는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기는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시기다. 청소년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는 동시에 또래집단과 같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감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고 해석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 유설희 인턴기자(고려대 철학과 졸업))


마냥 웃고만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다. 요즘은 맞벌이 부모로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도 많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친구들과 소통하는 아이들도 많다. 조카들도 마찬가지다. 친구랑 이야기하려고, 웹툰 보려고 무심코 연 인터넷 세상에서 저런 말들이 쏟아지고 들어오고 있다니 스마트폰을 무조건 사용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걱정스럽다. 부모님들이 어느 정도 이런 현실을 알고 적절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아이들과 소통하고 계실까?


말은 힘이 있다. 그래서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나도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사로 듣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은 알려주고 같이 고쳐가야겠다.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거나 재미있으면서도 신기한 토박이말을 사용하는 BJ는 없는 걸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청소년기의 일시적 현상이라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정신에 몹쓸 말들이 오가는 건 영 꺼림칙하다.


또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 단어를 가끔씩 섞어 쓰고, 귀찮다고 문장 부호도 마음대로 사용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부터라도 나의 언어, 아이들의 언어에 더 세심히 신경쓰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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