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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ug 07. 2017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

제각기 다른 손가락

'와~ 진짜 덥다! 이제 여름에는 수업도 못가겠네.'

과외가는 길, 계속되는 폭염에 길을 나서기가 아찔하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세 대의 선풍기가 각각 열 받지 않도록 이거 틀었다, 저거 틀었다 해도 더운 바람은 숨을 턱턱 멎게 한다.


머리도 어지럽고 아롱거리는 정신에 밥벌이인 과외 가는 길도 힘들 정도로 지금은 무더위와 전쟁중. 양산을 들고 정류장에 터벅터벅 걸어가니 타려는 버스가 금세 도착했다. '고마워라~' 버스는 언제나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살 것 같다.


"선생님, 오늘은 거실에서 하세요. 너무 덥네요."

학부모님이 보통 날씨가 아니라며 미리 에어컨이 작동된 거실에서 수업을 하라신다. 선풍기 한 대도 돌아가고 있다. 감사한 배려이다. 더위에 허겁지겁 왔는데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든다.


거실 식탁에 앉아 과외 학생이 문제를 풀 동안 둘러보니 주방 싱크대와 냉장고 등 가전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저 그릇 쓰시는구나.' 흰 바탕에 초록색 무늬가 둘러진, 어디서 많이 본 그릇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큼직한 냉장고가 듬직하게 서 있다.

'참 편안하겠다.'  우리 어머니도 이런 데서 살면 저런 주방에서 요리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한숨 낮잠도 자고 얼마나 편안할까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는 교양도 있고 미모도 있는데 능력이 부족한 딸로 이런 호강도 못 받고 사는구나 싶어 저절로 드는 어머니 걱정과 스스로를 자책하는 열등감이 고개를 든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한다.

'언제는 돈이 많아 넉넉해서 이리 살았니? 존재만으로도 서로 힘이 되는 걸.' 이제와서 신세 타령은 넣어두고 다시 힘을 내자.


똑똑해서 쉽게 이해하는 아이, 넉살이 좋아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는 아이, 정직해서 숙제라도 빠뜨린 날에는 사색이 되는 녀석 등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제각각 다른 색깔과 무늬를 지닌 손가락들이다.

누가 더 먼저고 나중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귀하고 떨어지냐의 성격도 아니다. 모두 품고 가르치고 티격태격하며 정드는 귀여운 강아지들이다.


날씨가 덥다고 에어컨을 세게 틀었는데도 계속 쫑알거리다,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면 좋아라 입에 물고

"선생님, 좀 쉬었다 해요. 아이스크림 먹을 때까지요." 하는 사랑스러운 떼쟁이들.


 이제 열등감을 느끼게 한, 에어컨 없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없는 것에 주목하여 문제 삼지 말자.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고 인내의 미를 거둬보자.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그러고 말리라.

손가락의 기능이 다 다르듯, 사는 모양새도 다른 세상. 그래도 선풍기 여러 대로 이 더위를 버티고 있는 나는 감사할 게 많은 사람이다.


'불평이 있는 곳에 행복이 깃들 수 없다!'

에어컨 없이도 마음에 감사가 넘치면 거기가 천국이다. 자, 힘을 내서 선풍기 있는 집으로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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