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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y 31. 2017

"제 오미자차 더 드릴게요."

어느 새 물들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아니 그 아이와 수업을 하기 전 학부모님께 항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아이가 학습을 좋아하지 않고 조금 산만한데, 선생님의 이끄심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그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 속에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고 내 마음도 아파왔다.


  '아이의 학습적인 부분 때문에 그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구나.'


  쉽게 말해서 이 아이는 정적인 수업보다 동적인 수업에 더 관심이 많고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므로

상대의 말보다 자기 말 하기가 더 바쁜 친구이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개념을 설명할 때 집중하지 않는 편.


  처음 아이를 만나고 학습적인 면보다는 그 아이와 친구처럼 가볍게 즐기고 노는 활동 중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내 나름대로 집에서 영상을 보며 수업에 대한 준비를 해가도 준비했던 내용을 풀어놓을 때보다 그냥 아이와 즉석 아이디어로 게임을 주고 받듯 함께 대결하고 내기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다.


  교구를 가지고 진행하는 수업인데,  그 아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내 의견이나 설명은 많이 생략하거나 양보했다. 그냥 수업 자체를 아이와 재밌게 논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므로 한글이나 숫자에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새 서로 정이 들고 게임을 하거나 서로 미로를 만들어 대결을 하는 구도로 나갔기 때문에 아이는 나랑 수업하는 시간을 무척 즐기고 재미있어 하는 눈치.


  그러다 이번주, 어느 새 봄이 가고 여름이 부쩍 다가와 참으로 더운 날. 어머님은 올록볼록 투명한 컵에 시원한 얼음을 동동 띄운 오미자차를 준비해주셨다. 수업하러 오느라 걷고 차 시간 맞추느라 정신없이 서두른 탓에 지쳐있던지라 오미자차를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게 마시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한 컵을 다 마시기에는 시간이 걸려 옆에 두고 책상 위에서 교구를 이용하여 아이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아이의 손이 내 컵을 툭 치고 말았다.


  "어..."


  조금 당황해하는 아이를 안심시키며 가방에 있던 작은 물티슈를 꺼내 부랴부랴 바닥을 닦고 있는데 아이가 하는 말,


  "선생님, 제 오미자차 나눠줄게요. 제 꺼 좀 드릴게요."


  바닥 닦느라 정신없는 내게 아이는 바닥보다 내 컵에 줄어든 오미지차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이는 내 분량의 오미자차가 자신으로 인해 줄어든 것, 그 점이

미안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거다. 고집도 세고 자기 의견이 분명한 아이인데, 저렇게까지 말을 하며 선생님이 자신의 실수로 오미자차를 많이 못 마시게 된 것에 저리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비록 한글을 다 읽지 못 하고 숫자를 세다가 빼먹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게임을 끌고 가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걱정할 줄 아는 넉넉하고 따스한 마음을 지난 아이구나 싶어 참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이 아이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속으로 짐작해본다.


  어느 새 그 아이와 수업한 지도 해를 넘겨 진행 과정이 끝나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정이 쌓여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즐기는 우리.


  "아이야, 그 마음 잊지 않을게!

  그리고 기억하렴, 그 누구의 말에도 기죽지 말고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네가 자라면서 어쩌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때로는 좋지 않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도 되지만 네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너를 지켜주고 또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게 할 거라고 믿는다. 나도 네 삶을 기대하고 응원할게.


  지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너의 마음에 작은 주름이 생겨도 네 본연의 모습으로 꿋꿋하게 이겨내고 멋진 나이테를 간직하길. 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힘을 내볼게.


  "축복한다, 우리 꼬맹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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