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메시지가 필요한 시대
앵커
교수님, 이런 비슷한 유사점이 있는 사례를 국내나 아니면 해외에서의 사건에서도 혹시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인터뷰]
많죠. 해외나 국내에서나 이런 유사한 사례들이 굉장히 많은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모든 행동은 바이오 사이오소셜이라는 이런 개념이 있어요.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요인. 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특징, 또 가정과 사회적인 특징, 이런 전체적인 구조에서 이렇게 봐져야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분 개인적으로 봐지는 특징은 가치관의 문제, 이런 문제가 있을 수가 있고 또 개인이나 가족적인 이런 요인을 보면 어릴 때 부모하고 성장 과정에서 학대당하거나 방치당하거나 공감을 못 얻고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도움을 받는 이런 관계가 형성이 안 돼서 부작용으로 성적인 일탈에 빠지거나 도박 중독에 빠지거나 이런 것으로 빠져나와지는 현상이라고 봐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또다시 경고도 하고 심각한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데 가족의 핵심은 물질이나 이런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부부 사이에 따뜻한 애정과 사랑,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 돌보고 애정을 주고 받는 따뜻한 관계가 깨지면 거기에서 부작용으로 각정의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을 한 번 심리학적 입장에서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 YTN 뉴스 사회면 2017-10-11 15:00
(채규만/성신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중)
'어금니 아빠 이영학, 심리 상태는?'이라는 제목으로 심리학 전문가와 앵커가 나눈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 "이런 관계가 형성이 안 돼서 부작용으로 성적인 일탈에 빠지거나 도박 중독에 빠지거나"가 나온다. 난 그 구절 속에서도 '도박 중독에 빠지거나'에서 아차 싶었다. 그것은 바로 살아생전 우리 아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남자'는 도박하느라 결혼식에도 제 시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삶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흐트러진 유형의 대표주자다. 딸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집안으로 도박꾼들을 지속적으로 끌고 오는 그 남자의 모습에 나는 질릴 대로 질려버렸고 '이 집구석을 언제 탈출해야 하나?', 그런 고민으로 머리 아픈 밤들을 숱하게 보냈다. 그러던 내가 끝까지 집을 지킨(?) 이유는 그 남자와 결혼한 불쌍한 '그 여자', 바로 엄마 때문이다.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현장 검증을 마친 그는 '악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이들이 아프건 말건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장된 연기를 펼치며 부인과 딸까지 유린한 몹쓸 인간으로 신문 지면에 새로이 등장했다. 마음이 참담하고 어둡다. 14살. 중학교 1학년 나이. 십대, 청소년, 아직 세상에 제대로 나설 준비조차 다 갖추지 못한 나이다. 심리학 교수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보통 13살이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해져 다른 이들에게 따지거나 다른 의견을 내세우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한다. 그런데 살해범의 딸은, 더구나 희귀병까지 앓고 있어 누군가의 도움과 보호가 없이 홀로 살아가기 힘든 딸은 그에게 제대로 된 양육과 보호를 받지 못했다.
얼굴 부위에 수술을 하면 트라우마가 생길까봐 심리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 특수 학급을 추천한 학교에 화를 내고, 연약한 딸을 이용하여 친구를 유인한 싸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준 남자. 그는 악마같은 짓을 했다. 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아직 입을 굳게 다물고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 아빠는 도대체 왜 도박에 미쳤을까? 그 이유를 어느 새 점점 깨닫고 있다. 알게 되었다.
위 기사의 앵커가 교수의 말이 '교과서적인 답변'이라고 직접 언급할 정도로 답은 분명하다. 악마가 탄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악마에게서 키워지면 안 된다는 거다. 아빠가 도박 중독에 빠져있는 요인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성장 과정과 환경도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예측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리 살가운 분이 아니셨고, 아빠는 대가족 밑에서 제대로 된 관심과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겉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한 집에서 산다는 건 지옥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천만다행스럽게도 나는 천사같은 엄마가 곁에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조금씩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쌓인 그 상처와 고통의 흔적들이 모조리 지워지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아빠를 용서한다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건 신앙의 힘으로도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숙제이고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는 자신과의 전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로 탄생하는 그 영혼들이, 악마를 만들고 있는 그 영혼에 대해 한편으로 짠한 감정이 든다.
왜? 왜 그랬어요?
그렇게 방치되고 그렇게 버려지고 그렇게 상처받았군요.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요?
인터넷을 통해 흔하게 접근할 수 있어 십대 마약사범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며, 전라도 해남 지역 어느 중학교에서 백혈병 환자가 한 달 사이 3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성매매로 에이즈에 걸린 줄도 모르던 어느 여고생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에이즈를 옮긴 남성은 찾을 길도 없어졌다. 왜 우리 십대들에게 이런 아픈 일들이 자꾸 생기는지. 이 땅에 청소년들이 숨 쉬고 웃을 공간이 왜 이렇게 적어지는지 씁쓸하다
생명을 쉽게 여기는 풍조는 물질이 발달되고 돈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현대 사회가 울리는 경종이며 우주의 위기 그 자체다. 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 아픈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하는 게 속상하다. 이 모든 게 사람으로 인한 일이라는 사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간, 과연 어떤 존재인가? 카프카가 '변신'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돈을 벌지 못하면 이제 바퀴벌레와 다를 바 없는 미개한 족속이 되는 것인가.
단 한 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소중해요!" 이 한 마디면 사람으로 인해 멍들고 지친 족속들이 살아날지 모른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 힘들때 살며시 건네는 미소 한 줌. 주저 앉아 넋을 잃은 영혼들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그대로도 괜찮아요."라는 무언의 응원가. 돈이 들지 않는 백신들이 얼마든지 우리 속에서 나올 수 있는데도 점점 사회는 병들어 가고 사람들은 힘겨워한다.
이토록 아픈 세상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점검해볼 수 있기를.오늘 나는 어떤 말을 건넸는가? 누구를 정죄하지는 않았는지,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하여 가만히 있는 사람의 속을 휘젓지는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세상은 아직도 단 하나, 그것을 원한다.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그것뿐일지도. 사랑. 그 사랑이 부족하여 온 누리가 몸살을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