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능력이 부족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또한 사랑하는 것을 이러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가정한다. 즉 사랑에 실패했을 때, 마땅한 상대가 아니었다거나 꼭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뿐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라고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 글은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 씨가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자신의 책에 옮겨온 문장들이다. 핵심은 사랑은 대상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첫사랑도 그랬다. 그를 처음 봤을 때 후광이 비취듯 온 세상이 환해 보였다. 얼마나 멋지고 잘생겼던지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왕자님에게 먼저 등을 돌린 것도 변덕스러운 나였으니. 인생이란 정말 반전의 연속이자 결말을 알 수 없는 소설 같은 것인지도.
이십 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가 인생을 알면 얼마큼 알까? 상대방의 처지를 찬찬히 살필 여유도 없었거니와 그때 나는 사랑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오만과 '이 정도는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라는 확신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먼저 돌린 철부지 그 자체였다. 나이도 어렸거니와 이해하기보다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관계를 지속시켜야 할 이유보다 이 사람과 헤어져야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소중한 인연을 또 한 번 스스로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그릇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음을 담는 인격의 그릇 또한 너무 작아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관계를 이어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의 능력,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깊이가 너무 얕았다는 데 있었다. 나이를 먹고, 책을 읽고 자신을 조금씩 성찰해 가면서 누구를 만나든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넓은 세상에 나에게 딱 맞는 천생연분이란 찾기 힘들겠지. 아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연애와 결혼은 천지차이니까 환상을 버리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그 말이 백 번 맞다.
장성미 가족행복연구소 대표는 "결혼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또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평생의 반려자로 불리는 사람에게도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쯤 첫사랑에 성공하여 자녀를 낳고 평범한 유부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자주 안 한다고 섭섭해하고, 답장을 일찍 안 한다고 속 끓이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상대의 마음을 자꾸 확인하려 들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마음이 엇나가기도 했다. 지금도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의 문제점에만 집중하여 비난의 화살을 쏘는 대신 '그가 그 상황에서 왜 그랬을까?' 하고 한 번쯤 되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이제야 조금은 생긴 듯하다.
비단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밑바탕이 깔려 있어야 건강한 행진을 할 수 있다. 그때 놓쳐버린 많은 것들을 뒤늦게 알았지만 이제라도 성숙하고 성장해 가는 작업들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 사랑의 능력이 부족하여 상처를 주었던 수많은 인연들, 삶의 길 위에서 함께 호흡하고 걸어갔지만 멀어져 버린 수많은 관계들에게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