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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Feb 05. 2018

'별을 생각하는 계절'에

"나도 글을 써야겠다!"

크리스천이라 미신을 믿지 않고 '타로'조차 재미로도 보지 않지만 이상하게 나만의 생애 리듬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스무 살이 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주기로 힘든 해가 반드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느 해는 무탈하고 기운 좋게 넘어가다 2~3년 후가 되면 어김없이 시린 날이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몸과 마음이 날씨처럼 한파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마음밭도 출렁이는 것도 있으리라. 문득 글 쓸 힘도 없어지고, 쓰고자 하는 의욕은커녕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님들의 알림에도 무감하게 지나칠 수밖에. 돈이 마르니 마음도 시들어가고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이제는 원망도, 부르짖을 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게 꿈만 같고 고난의 연속인 생이 그리 달갑지 않기까지 하다.


작년부터 글쓰기 동아리 모임을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총무로써 회원들을 챙기는 일도 점점 시들해져 가고, 모든 게 귀찮았다. 제자들은 교육비를 받기에 수고를 수고로이 생각하지 않지만, 이분들은 오타 수정부터 문단 나누기, 모임 참석 유무, 챙기고 얼르고 독려하여 메일을 받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달갑지가 않았다. 종종 대며 다니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질 찰나, 회원들이 보내온 글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다.


자신이 사는 동네, 경영이 어려워 원장이 자주 바뀌는 미용실이 있는데 새로 온 원장은 한글 이름으로 작명을 하고 손님을 상대하는 태도에 정성이 깃들여있어 장사가 꽤 된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분은 수능을 마친 아들이 친구들과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갔단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과 친구들은 알려진 관광 명소보다 윤동주 시인의 모교였던, 도시샤 대학으로 일정을 잡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느낀 바가 크다고 했다. 그리고 큰언니이자 어머니뻘인 어느 작가님은 글쓰기를 '신내림'에 비유했다. 모처럼 온몸이 사르르 떨린다. 설레는 것이다. 신내림이라는 제목도 비상하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기에, 수긍이 되고 과연 그렇다 공감하기에 그 글이 참 반갑고 좋았다.


물론 나는 20대 초반에 이미 문학의 정점을 찍은 대작가가 아니다. 윤동주나 그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정지용 같은 문학적 감수성도 부족하다. 경상도 여인으로 맏이인 데다가 타고난 애교나 유연함도 떨어지고 악바리 마냥 무조건 돌진하는 형도 못된다. 그런데 신내림처럼 하고 싶은 말이 올라오면 토해내고 싶고, 남들의 발전에 질투를 느끼면서도 따라가서 그 경지에 돌입하고 싶다. 속에 있는 응어리도, 기쁨도, 애달프고 긍휼히 느껴지는 모든 마음도 글로 풀어내고 싶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보다는 나로서 살아가는 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자만했구나. 또다시 우를 범했네.'

그분들이 퇴직해서 시간이 많다고,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모임에 참석하실까? 각자의 삶의 무게와 자리가 있지만 자신으로 살아내고자, 글로써 공유하고자, 더욱더 성장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함께 하시는 게 아닐까? 저녁때 잠시 본 '쪽방촌의 겨울나기'(기사 내용)는 마음을 더욱 짠하게 한다. 그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이 거슬리는 건 '인간 실격'적 발언 때문이다.


"그러니 젊을 때 열심히 노력했어야지."

"나는 노후가 저리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아이고, 인간들아. 그들이 단지 무능력하거나 노력의 부재로만 힘들게 사실까? 어찌 그리 헤아려 보는 눈이 그것밖에 되지 않냐 나무라고 싶다. 개인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물려받은 재산 없이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의 앞가림은 미처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터이다. 설령 부족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래도 이 추운 겨울 살아보겠다고 보일러도 되지 않는 냉골에 몸을 뉘어, 추워서 이른 새벽에 깰 수밖에 없는 고통에 한 줌의 위로나 가엾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걸까?


이 땅의 소금으로 자신을 녹이라는 성경 말씀 앞에 작은 수고조차 하기 싫어 분노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나 되나 싶어 슬그머니 성난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런 계절이다. 춥고, 너무나 추운.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그러니 한 가닥 희망조차 놓아버리진 말자, 다짐해본다. '내가 쪽방촌 집주인이라면 보일러는 다 작동되게, 평수는 적어도 난방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짓고 싶은데.'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서 있는 나무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봅니다."

- 신영복, <겨울나무 별>


우리 속에 별을 품고 생각하는 작은 여유가 생기기를, 그러기엔 너무 아픈 세상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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