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울리면 기차는 반드시 온다!
오늘은 '글친' 모임이 있는 날이다. 한 달에 두 번, 도서관 스터디룸에 모여 원고를 읽고 의견을 나누고 한솥밥(?)을 먹고 우애를 다진다. 환경 에너지 공모전에서 당첨되어 시상금으로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사준 어느 작가님의 활약으로 강현순 수필가를 모시고 특강을 들었다.
특강 날짜가 잡히면 강연자에게 예의를 다하기 위해 그분의 책을 산다. 저자의 사인을 직접 받고 싶은 욕심과 언젠가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출신으로 경남문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고 수필집을 네 차례 낸 바 있는 선생님. 갈매기 날개를 거꾸로 그린 듯 고운 눈썹과 붉은빛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저자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아니, 글친 회원 모두가 이 자리의 주역들이다.
도서관에서 수필집을 읽고 저자 소개란에 적힌 연락처를 보자마자 용기를 내어 특강을 부탁한 어느 작가님. 모임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원고를 가져와서 피드백을 받고 공모전에 부지런히 응모하는 모습이 회원들에게 늘 귀감이 된다. 그 열정을 따라가야지 싶으면서도 어느 새 손을 놓고 어영부영 시간만 버리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이른 시각부터 스터디룸에 모여 차 한 잔씩 앞에 두고 공부에 열을 올리는 선배님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정성을 더 들여 글을 쓰고 부지런히 달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특강을 맡은 선생님은 30년이 넘는 문필 활동을 해오면서도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글 쓰는 태도에 흐트러짐이 없다. 그동안 너무 가벼이 생각하고 쉽게 써온 게 아닌가 싶어 뜨끔하면서도 그 정신을 놓칠 세라 연필을 잡고 강단 앞 학생처럼 긴장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특강을 들었다. 글 쓰는 이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교정 부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 영어, 한자, 어려운 말 대신 쉽고 정확한 우리말을 즐겨 쓰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인상깊은 가르침을 두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시인이나 소설가와 달리 수필가는 글이 삶과 일치하므로 인격의 향기가 새어나오는 글을 쓰기 위해 먼저 자신의 삶이 반듯해야 한다고 하셨다.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에세이를 쓰는 이가 먼저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므로 인격 수양에도 애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과업인데 글과 삶이 일치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등단을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다. 어디 출신이라는 것이 평생 따라다니므로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등단을 하면 좋지 않냐고 하셨다. 한두 편의 작품을 갈고 다듬어 등단에 성공할 수 있지만 평소 부지런히 창작 활동을 해놓지 않으면 등단 후,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실력이 들통날 뿐만 아니라 난처해지기 쉽다고 하셨다.
신춘문예에 슬며시 도전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인지라 당당한 수필가 앞에서 슬쩍 의기소침해지다가 이 말씀을 듣고 다시 기운이 솟아났다. 신문사에 투고한 내 글이 아직 '설익은 밥'은 아니었을까. 쓰기 위한 글이 아니라, 글 쓰는 삶을 살면서 글과 삶이 일치하는 향기가 충분히 우러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쓰기에 더욱 정성을 쏟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겠구나 결심해본다. 누구나 글을 쉽게 잘 쓸 수 있지만, 글 쓰기에 임하는 태도 속에 늘 독자를 염두해두고 최고의 작품을 내기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숨길 수 없었다.
말 한 마디, 한 문장을 표현하는데도, 아니 어쩌면 온통 글쓰는 이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 엄연한 작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따뜻한 미소로 대해주시는 선생님을 보자 금세 아이같이 즐겁고 흐뭇해진다. 글을 쓰는 동아리가 있다는 말에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의 수필집에 도장까지 찍어 선물로 준비해오신 정 많은 선생님. 등단하고 신인인 자신을 보듬어준 대선배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셔서 글쓰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하신다. '아, 나도 저런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미래가 아닌 지금 해야할 일에 정신이 번쩍!
글친 단골집에서 콩나물 돌솥밥을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음이 울린다. 기차가 도착할 모양이다. 역무원이 나와 지휘봉을 휘두르며 앞을 가로막고 좌우를 살펴본다.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있게 기다리다 사진을 찍었다.
길 위의 인문학으로 우리는 인연을 맺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있다. 밥을 먹고 안부를 물으며 돈독한 정도 쌓으면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헤어질지, 변화될지 알 수 없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 계속해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이 있어 흐뭇한 한낮이 어느 새 어두운 저녁이 되었다. 고슬고슬 윤기 좔좔 흐르는 뜨끈한 밥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날까지 아자아자 힘을 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