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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an 23. 2019

표현하고 사나요?

'예'가 없는 '인'은 사랑이 아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주나라는 도읍지의 이동에 따라 동주와 서주로 나뉜다. 동주를 다른 말로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공자는 춘추전국 시대에 유행한 여러 학파 중의 하나인 유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를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인'이라 할 수 있다. 인(仁)이라는 한자를 살펴보면 '사람이 둘'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두 사람 이상이 살아가다보면 부딪치기도 하고 갈등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립된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인 '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인(仁)'과 더불어 강조한 덕목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예(禮)'이다. 이 글자는 제단에 곡식을 바치고 풍요로움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감사의 마음을 제사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인과 예를 생각하며 평소 나의 행동을 떠올려보니 인이 있어도 예가 없을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 잘 먹었습니다."

으레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밥을 다 먹은 후 감사 인사를 할 때보다는 그냥 말없이 일어서거나 외출 준비에 바빠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았다. 어쩌다 한번씩 저렇게 인사를 하면 그 짧은 표현에도 어머니는 진심으로 대답하신다.

"그래, 우리딸.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평소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마주할 때나 일상에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기보다는 은근히 넘어가거나 마음에는 있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무뚝뚝할 때가 많다. 일일이 고맙다고, 잘 먹었다고 식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다 아신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을 말로 표현했을 때, 어머니의 표정도 금세 달라진다. 그 말을 듣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음식을 준비한 자신의 수고로움을 딸이 알아줘서 힘이 난다는 얼굴로 바뀌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같이 수업을 하는 여러 명의 제자 중에서도 마주칠 때 반갑게 인사하고 살갑게 구는 아이에게 쉽게 정이 간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오늘 먹은 점심상^^


이러한 예의 정신을 도서관, 글쓰는 동아리인 '글친' 작가님들에게서도 발견할 때가 많다. 새해 첫 모임이라고 회원들에게 점심을 사주신 어느 작가님은 자신의 사업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남몰래 돈을 빌려주었단다. 사회적으로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여러 해 함께 일해온 식구같은 동료이기에 조금씩 빌려준 것인데, 그 직원이 가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큰 돈은 아니지만 당장 갚을 수 없는 현실에 이런저런 고민으로 혼자 끙끙대다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모양이었다. 평소 직원의 성실성을 믿고 인을 예로 베푼 작가님의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 돈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한 직원의 소식에 놀란 가슴을 넌지시 털어놓으신 셈이다.


언제 돌려받을지 알 수도 없는 돈을 오로지 신용 하나로 선뜻 내준 작가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얼마만큼 인을 드러내며 예를 표현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자잘한 일들. 제자들에게 환한 미소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일.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행위. 지인들에게 요즘 잘 지내냐는 따뜻한 안부를 전하는 것.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신경쓰면 얼마든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 쉽게 지나쳐버렸다. 알면서도 하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글친의 단골집인 콩나물 국밥집에서 점심으로 따끈한 국물을 먹으며 생각했다.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상대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구나. 혼자서 속으로만 걱정한다고 진심이 전달될 수 없다면 마음을 알 수 있게 겉으로 드러내고 상대가 알 수 있게 친절하게 풀어서 이야기해줘야겠구나. 조금 힘이 들고 번거롭지만 사람 사이는 그렇게 다져가야 되는구나.'

이렇게 또 한번 인생 철학을 배우고 글을 적는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멀리 있지 않다. 사랑하는 마음을 알맞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공자가 말한 인과 예이리라. 평소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국밥을 먹은 후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밀크커피의 맛이 일품이었다. 작가님의 마음이 녹아든 커피를 담은 종이컵 문구 또한 걸작이다. 명품이 따로 있나? 사랑을 담고 있으면 그게 다 명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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