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제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였다. 보통 이때가 되면 거리에 캐럴이 퍼지고 화려한 조명을 뒤덮은 나무들로 반짝인다. 요즘 경기 탓인지, 하얀 눈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평소가 별 다를 것 없는. 그러나 달력에 붉은 색 표시로 보아 공휴일임이 분명하다.
어릴 적부터, 아니 모태에서부터 교회에 발을 담근 몸인지라 성탄과 그리스도의 탄생, 그분의 고난과 부활은 내게 익숙한 소재이다. 부서별로 성탄축하공연(?) 연습으로 분주하고 평소에는 하지 않는 트리와 조명. 그나마 크리스마스임을 알려주는 표식들이다. 이 날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고 들뜬 아이들과 산타 대신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바쁜 부모들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여 오붓한 만찬을 즐기는 연인들도, 모처럼 큰 맘 먹고 해외에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도 있다.
성탄이 다가오기 전 감기로 일주일 정도 몸살을 앓은 나도 그분의 고난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선물을 주고받고 외롭지 않게 보내는 공휴일이기를 아마 무의식에서부터 바라온 터이리라. 여유가 없었던 집안 형편으로 어릴 적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자신 있게 말하기보다는 눈치껏 속으로 넘기고 참는 법을 터득해온 탓인지 대놓고 선물 타령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속으로 의지할 분으로 모시는 그분에게도 그래서인지 웬만해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저들이 어찌 생각할까,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비웃지 않을까. 아니 남들의 시선을 떠나서 입 밖으로 아쉬운 소리를 해대는 모습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자존심 상해서 아파도, 힘들어도 그냥 혼자 이겨내고 참는 것에 익숙했다.
우리가 흔히 ‘열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영어 passion은 ‘고난’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국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도 태어나기 전 불행의 예언을 선고받았다. 영웅의 삶은 가볍지가 않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과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반드시 죽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모험과 고난을 친히 겪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부르는 성탄축하는 그의 죽음을 즐거워하는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가 죽어야만 우리가 살고, 그래서 염치없게도 우리는 그분의 탄생에 애도와 감사 대신 하나의 축제 그 자체로 깊은 고민 없이, 묵상 없이 하나의 종교 행사와 가족 모임으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얼마 전 독감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추락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는 나를 떠올리셨단다.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환청은 아니지만 환각 비슷한 걸 보며 이승과 저승을 오르내리던 나를, 2018년 겨울 뉴스에 모정은 자신의 새끼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셨다. 처음에 나의 상태를 대수롭게 여기던 부모님은 가벼운 감기로만 알고 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셨고, 똑같은 번호로 기어코 시험을 치르고 곧장 엎드렸던 나는 죽음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저는 아직 죽으면 안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고 대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했어요. 이른 나이에 죽는 것보다 더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저희 집 가난한 거 아시죠? 하나님, 이번에 제 목숨만 살려주시면 덤으로 얻은 인생인줄 알고 열심히 돈 벌어서 엄마를 돕고 싶어요. 아빠는 엄마를 도와줄 사람이 못되는 거 아시잖아요. 제발 고등학교만 졸업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돈 벌어 엄마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문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으로도 몸이 불타는 것 같이 뜨겁고 머리가 아파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종일 누워있다 저승사자같이 갓을 쓴 시커먼 아저씨를 본 것 같다. 무섭기도 하고 진짜 죽을 때가 됐나 싶어 속으로 저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잠에 빠져 들었다. 그때의 기도 덕분인지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이 끝나지 않은 탓인지 감사하게도 아직 생은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어머니와 다투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좋다. 그 후로 아픈 게 정말 싫다. 아무 것도 못 하니까. 차라리 일을 해도 아픈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어제와 같은 공휴일에는 나도 모르게 들뜨고 놀고 싶은 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누군가는 이미 죽었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도 시작만 계속될 것 같지만 반드시 끝이 있다. 끝이 온다. 죽기 위해 태어난 예수. 십자가라는 참혹한 형틀에 손과 발이 대못에 찔러 비웃음당한 예수. 병사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피와 물을 모조리 흘린 예수. 그러면서도 저들이 무얼 하는지 자신들은 모른다며 용서를 구한 예수. 성탄이 하루 지난 오늘,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써야 할 원고는 안 써지고 외로워지는 마음을 다잡아 다시 그분을 생각한다. 사흘 후 돌무덤을 깨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구원이 이 땅에 사는 힘든 이들,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