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이 문장은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주인공 소년이 하는 말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체 예순다섯 살의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져 인생의 여러 가지 맛을 미리 알게 되는 아이다. 그의 말처럼 내게도 그런 인생의 맛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
신분증 대용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운전면허증이란 게 내게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싫어했고 움직이는 것 자체와 큰 관련이 없이 살아온지라 굳이 면허를 딸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았다. 주위에서 “면허는 일찍 따놓는 게 좋아.”라고 넌지시 충고 아닌 충고를 해와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라 ‘필요하면 다음에 따면 돼.’라는 심정으로 지나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는 삼십 대가 지나고 사오십 대가 되어도 면허증은 내 인생에서 영영 멀어질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겨났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 차를 사기 시작하고 꼭 차가 없더라도 면허증이 있다는 자체가 뭔가 남들에게 하나의 자격증처럼 당당해 보이는 것이다.
평소 운동 신경이 둔감할뿐더러 면허증을 따기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형편도 빠듯한데 불필요한 돈까지 지출하며 시간과 노력을 들일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망설이던 나를 단번에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게 해 준 사건이 생겼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합니다, 운전면허 과정 간소화!”
신문에 난 대대적인 면허 관련 기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고난도 코스를 없애고 예전보다 비교적 간단한 코스라서 도전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그 해를 넘기면 이런 기회는 인생에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행운의 여신을 놓칠 수가 있으랴. 큰마음을 먹고 면허를 따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일하는 학원 수업이 없는 낮시간을 이용해 운전 학원 수업을 듣기로 했다. 면허증 선배인 동생과 운전 학원에 가서 등록을 마치고 일정표를 받았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붙었다. 문제집을 사서 형광펜을 그으며 내용을 여러 번 훑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실기 시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운전대를 잡은 내게 운전학원 선생님은 처음 몇 번만 친절했을 뿐 호통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니,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어쩌란 말이냐, 완전 처음인데요. 나의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핸들을 제대로 꺾질 못한다느니, 감각이 없다는 둥 대놓고 배우려는 수강생에게 면박을 준다. 민망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기는커녕 얼른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학원에서 도로 주행에 앞서 코스 시험을 치렀다. 학원을 다닌 보람은 있어 무사히 통과. 이제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자 필수인 도로주행이 남았다.
가족의 응원을 한 가득 받고 긴장 어린 첫 시험은 불합격. 시험에 떨어진 것도 부끄러운데 재시험을 위해 비싼 응시료까지 내야 한다니 속도 부글거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끝맺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각오와는 달리 아직 핸들에 익숙지 못한 나는 결국 코너를 돌다가 점수를 깎여 두 번째 불합격을 받았다.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니 모든 운전수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세상에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이 제일 위대하게 보였다. 다시 재시험 등록을 마치긴 했지만 숨어들 쥐구멍이 간절했다. 수동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고 2종 보통인데도 이 지경이라니. 시험 당일 어머니와 두 손 맞잡고 뜨거운 기도를 드린 후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끝이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굳은 각오로 대기했다. 드디어 나의 차례. 이전과는 다른 코스가 잡혔다. 그 길은 왠지 잘 달릴 수 있겠다 싶었다. 좋은 예감 때문이었을까? 옆좌석에서 점수판을 들고 점수를 매기던 감독관이 피곤한지 눈을 감고 기대어 있었다.
‘아, 내가 잘 달리고 있구나.’
무사히 학원으로 진입할 때까지 깎인 점수는 없었다. 이제 주차만 남았다. 그런데 주차는 행운의 여신이 동행하지 않았는지 점수를 깎였지만 합격! 너무 기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기쁜 마음에 음료수를 사서 운전 학원 선생님께 드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아직도 장롱면허로 남아있지만 당당한 면허증 소지자가 되었다.
칭찬보다 꾸지람을 더 많이 들은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 얼마나 짜릿하던지. 내게 운전면허증은 새로운 도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실패가 두려워, 스스로의 부족함을 걱정해서 가만히 있었다면 운전면허증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안겨준 소중한 시간들. 두렵지만 용기 내어 내디딘 한 발은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본 다음에’ 맛본 짜릿한 행복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