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할머니가 고추 달고 나와야 한대.”
뾰로통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불만 표시를 하는 어린 나.
“우리 예쁜 딸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어머니는 어려도 뭔가 기분 나빠하는 내게 저렇게 대답하셨단다. 아들이 아니라서, 딸로 태어나서 못마땅하셨는지 할머니는 나를 두고 고추를 달고 나왔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나 보다. 그걸 듣고 어린 나는 쪼르르 어머니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별로 살가운 정을 못 느꼈던 할머니와 달리 외할머니는 다정함 그 자체였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고민스러울 때 외할머니의 나긋한 목소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약이었다. 그런 외할머니가 하는 음식도 예외가 아니어서 몸이 아플 때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보다 외할머니의 손맛이 묻은 반찬을 먹어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아파서 현실과 상상의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 병원에 갈 힘도 없어 독감 주사를 2대씩이나 맞고 와서는 꼼짝없이 집에 누워만 있었다. 숨 쉬기도 힘들고 온 얼굴에서 열이 나 커튼으로 빛은 차단한 채 오로지 고독에 빠져 있었다. 차츰 열이 내리고 차도가 있자 바로 생각나는 음식. 그것은 외할머니가 담그신 열무김치였다. 물이 자작하게 있고 맑은 국물에 시원한 열무 줄기가 듬성듬성 썰려있는, 파란 고추와 붉은 고추를 같이 어슷썰기 해서 고명으로 넣은, 참깨가 여기저기 떠있던 김치.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 김치만 있으면 밥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외할머니 김치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딸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었던 어머니는 당장 외할머니에게 연락해서 김치를 공수해왔다. 연락을 받은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김치를 싸들고 곧바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자자, 여기 네가 찾는 김치 있다. 어서 먹어봐라.”
아픈 손녀가 당신의 김치를 찾은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도움이 되는 게 기뻤던지 외할머니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그 김치 덕분에 밥을 몇 술 뜨고 정신을 차려 회복의 기점을 찾았다. 당시 내가 찾은 음식 중에서 엄마의 손맛도 아닌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의 손맛을 찾은 것은 어렸을 적 외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그녀의 요리가 뇌리 속에 강력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외갓집은 섬이어서 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해서 배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내리면 몇 대 운행하지 않던 마을버스를 타고 골목길로 접어든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도 얼마를 걸어가면 흙으로 만든 외갓집이 나온다. 오래되어 낡고 자그마하다. 그런데 그 공간이 오직 외할머니라는 존재가 있기에 재래식 변소도, 창호지로 만든 허술한 방문도 참을만했다.
동생과 내가 놀고 있으면 마루에서 외할머니는 나무 도마를 꺼내 두툼한 칼로 양념을 만드신다. 마늘을 찧고 고추를 썬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손녀들을 먹일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고 우리는 곁에서 흐뭇하게 구경한다.
마디마디 옹이 지고 뼈밖에 없는 손으로 두어 가지 채소만 썰고 김치를 만들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아마 외할머니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진한 사랑이 마법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의 존재는 내게 큰 산과 같아서 그녀만 있으면 세상에 겁 날 게 없고 어떤 섭섭한 일이 생겨도 아테나같이 지혜로운 그녀가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줘 걱정거리도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요즘도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 열무김치를 보면 외할머니의 손맛이 깃든 그 김치가, 죽을 것처럼 아프던 내가 찾던 국물김치가 떠오른다.
지금은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외할머니의 음식 중 또 하나 기억하는 것은 바다 게 간장 무침이다. 흔히 게 하면 꽃게처럼 큰 것을 떠올린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요리에는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의 작은 바다 게가 들어간다. 외할머니가 바다로 나가 양동이에 바다 게를 먹을 만큼 잡아온다. 그때까지 어머니가 집에서 끓여준 꽃게탕만 먹다 자그맣고 시커먼 게들이 간장을 뒤집어쓴 무침은 너무 생소했다.
다진 마늘, 잘게 썬 파, 고추 다진 것 등이 양념으로 들어가고 바다 게는 익히지 않고 깨끗이 씻어 그대로 넣는다. 거기에 간장과 설탕, 깨를 넣어 잘 버무려주면 간단한 바다 게 간장 무침이 완성된다. 한눈에도 작아 보이고 시커멓게 생긴 게를 먹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특식이라고 우리를 위해 직접 잡아온 정성을 봐서 게 다리부터 살짝 깨물면 짭조름한 바다향이 베어 밥과 같이 먹을 만했다. 그래도 열무김치만큼 선호하지는 않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녀는 없고 그녀에 대한 기억만 남았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외할머니의 음식은 사소하기에 더욱 그립고 애틋한 힐링푸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