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늪에서 만난 것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나 했다. 혹시 그 힘들다는 슈퍼 면역이 다른 이도 아닌, 내 속에 있단 말인가? 아니! 절대, 아니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전염되었는지도 모른 채 이번 주 월요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긴, 어쩌면 늦게 걸린 편인지도.
직장의 변화로 하반기가 되자마자 마음고생을 조금 했다. 2년간 먹던 호르몬 약을 드디어 끊는 달이 되고 일 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초음파 검진도 무사히 끝이 났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려나 싶었는데,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병으로 전환되어 나와 만난 것이다. 무탈하려고, 무심하려고 애썼는데 마음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뭘 먹고 싶다, 사고 싶다, 가고 싶다는 의욕이 없는 상태. 직장을 나가는 행위도 나가야 하니까, 밥벌이해야 하니까 꾸역꾸역, 겨우겨우 버텨가는 상황.
직장에서도 어른들과의 문제로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꾸지람이 늘어나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몸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고 마음은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심정은 다 그만두고 싶은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형편은 그렇지 못해서 이 달 월급을 못 받으면 가정 경제가 파탄 나니 꾹 버틴다. 기분으로 일을 처리할 순 없으니 할 일을 하지만, 더 이상의 의욕도 신도 나지 않고 우울과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간다. 그런 찰나, 너무 쉬고 싶었던 걸까? 도저히 이게 아니면 못 쉬니 몸이 그렇게 향한 것일까? 국민 대다수가 걸렸고, 걸린다는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주말 동안 기절 상태로 몸져누운 나는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로 확실한 양성 판정! 혈관주사에 몸살 수액을 맞고 보호자인 동생의 차를 타고 무사히 귀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몸은 움직이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면역이 떨어지자마자 코로나와 만나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다. 그냥 기운도, 입맛도, 의욕도 없다. 단 하나, 출근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평안하고 정신 건강에 좋을 줄은...
기분이 안 좋다는 내게 지인이 선물해준 <<문제는 무기력이다>>를 틈틈이 읽고 있다. 슬슬 겁이 난다. 무기력에서 오랫동안 헤매면 어쩌나 싶어서. 그동안 열심히, 꿋꿋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무기력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해답을 기대하며 책을 읽고 있지만,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면 또 머리가 무겁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기 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마음의 미궁, 인생의 길을 찾는 인생의 미궁을 걷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아부을수록 당신은 더 위대해질 것이다.”
-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
시간이 지나면 미각도, 후각도 차차 돌아오고 입맛도 돌아오겠지. 그러나 마주치고 부딪쳐야 할 관계와 일은 그대로, 그 이상일 텐데... 코로나보다 무기력이 더 큰 걱정이다. 우선 꿀 같은 휴가를 맛보며 먹고 약 먹고 자고 책 보다 휴대전화 보며 멍 때리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도 점점 다가온다. 지금껏 그래 왔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겠지만, 어쩌면 인생이 먼저 의문을 가져왔다.
‘넌 뭐 때문에 살고 있니?’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예전에는 쉽게 답하고 확신 있게 말했던 대답들이 지금은 서성인다. 너무 지친 걸까? 쉼이 필요하고, 나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미로가 아닌 미궁으로, 이것 또한 내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가서 걸어 나와야 한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인생이므로. 나의 인내심이 너무 쉽게 드러나지 않길 바라며.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