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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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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an 06. 2023

조카의 요리

치울 일이 꿈만 같아라

동생과 위아래층 살면서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설거지할 일이 더 자주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정신이 들고 보니 똥강아지들 수시로 올라와 주방을 점령, 밥을 챙겨줘야 하고 설거지는 여러 번. 혼자 조용히 하루를 마감할 수 없는 단점이 생겼다.


장점은 요리 좋아하고 식성 좋은 중딩 조카에게 한 입 얻어먹는 것.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삶은 옥수수를 먹기 좋게 듬성듬성 잘라놓으면 이 아이는 그냥 먹지 않는다. ‘마약옥수수’를 만든다며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설탕 꺼내고 마늘 저며 설탕에 볶은 후 마늘빵 위에 얹어지는 소스 같은 맛이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옥수수를 버터 두른 팬 위에 퐁당. 마구 볶는다.


‘아, 또 일거리 생겼네!’,

싶은 내 마음은 모르겠지. 아이는 뭘 하나 먹어도 허투루 먹지 않고 냉장고 뒤져 야무지게 챙겨 먹는다. 그러면서 다이어트 걱정이니, 원 참!


오늘은 야식 참고 내일 아침 새로 밥을 하려고 했더니 늦은 저녁 학원 다녀와서 배고프다며 두부 김치를  먹는다. 귀찮아서 내일 아침 먹으려고 참고 있었는데 조카에게 굽는 김에 조금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진짜 두 부 세 조각 구워주고 본인은 김치 꺼내 맛깔난 야식을 잘 차려드신다. 사실 더 많이 챙겨줘야 하는데 귀찮아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 먹으니 기특하기도 하다. 요리보다 치우는 걸 더 싫어하는 동생은 주방을 잘 쓰지 않고, 몇 번 설거지하더니 보통 일이 아니라며 수고가 많다며 모처럼 언니의 고통(?)을 알아준다.


이제 개인적인 시간은 더 줄어들고 인내의 시간은 늘고 있다. 오붓한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조카들이 잘 먹고 크는 게 낫지, 안 먹고 말라가면 그건 또 어찌 볼 것인가.

학원 수업으로 마음 편히 저녁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늘 시간에 쫓겨 대충 차려주고 나가기 바빴는데 이번주 학원 방학으로 모처럼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 감사하다.


어제는 생애 처음으로 조카들과 글램핑을 다녀왔다. 추워서 코가 빨개졌지만, 모닥불 피워놓고-이것도 다 돈이다- 마시멜로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 아이들도 나도 대만족. 서로가 말은 안 해도 각자 힘든 점이 있고 상처와 슬픔이 있지만, 그 와중에 함께 하고 추억을 쌓아가면 있던 정은 더 진해지겠지.


이모를 보낸 슬픔이 가득한 마음도 불멍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 자체로 있을 수 있어 훈훈했다. 이렇게 조금씩 마음속 불씨를 살려내는 2023년을 보내야지. 사진으로 확인한 얼굴에는 예전과 다른 활기가 줄어들었지만, 한 걸음씩 또 그렇게 내딛다 보면 귀중한 시간이 쌓이겠지.


일상이 힘들고, 고맙고, 그렇게 지나가는 마지막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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