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울 일이 꿈만 같아라
동생과 위아래층 살면서 달라진 풍경 중 하나는 설거지할 일이 더 자주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정신이 들고 보니 똥강아지들 수시로 올라와 주방을 점령, 밥을 챙겨줘야 하고 설거지는 여러 번. 혼자 조용히 하루를 마감할 수 없는 단점이 생겼다.
장점은 요리 좋아하고 식성 좋은 중딩 조카에게 한 입 얻어먹는 것.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온 삶은 옥수수를 먹기 좋게 듬성듬성 잘라놓으면 이 아이는 그냥 먹지 않는다. ‘마약옥수수’를 만든다며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설탕 꺼내고 마늘 저며 설탕에 볶은 후 마늘빵 위에 얹어지는 소스 같은 맛이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옥수수를 버터 두른 팬 위에 퐁당. 마구 볶는다.
‘아, 또 일거리 생겼네!’,
싶은 내 마음은 모르겠지. 아이는 뭘 하나 먹어도 허투루 먹지 않고 냉장고 뒤져 야무지게 챙겨 먹는다. 그러면서 다이어트 걱정이니, 원 참!
오늘은 야식 참고 내일 아침 새로 밥을 하려고 했더니 늦은 저녁 학원 다녀와서 배고프다며 두부 김치를 해 먹는다. 귀찮아서 내일 아침 먹으려고 참고 있었는데 조카에게 굽는 김에 조금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진짜 두 부 세 조각 구워주고 본인은 김치 꺼내 맛깔난 야식을 잘 차려드신다. 사실 더 많이 챙겨줘야 하는데 귀찮아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 먹으니 기특하기도 하다. 요리보다 치우는 걸 더 싫어하는 동생은 주방을 잘 쓰지 않고, 몇 번 설거지하더니 보통 일이 아니라며 수고가 많다며 모처럼 언니의 고통(?)을 알아준다.
이제 개인적인 시간은 더 줄어들고 인내의 시간은 늘고 있다. 오붓한 시간은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조카들이 잘 먹고 크는 게 낫지, 안 먹고 말라가면 그건 또 어찌 볼 것인가.
학원 수업으로 마음 편히 저녁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늘 시간에 쫓겨 대충 차려주고 나가기 바빴는데 이번주 학원 방학으로 모처럼 아이들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 감사하다.
어제는 생애 처음으로 조카들과 글램핑을 다녀왔다. 추워서 코가 빨개졌지만, 모닥불 피워놓고-이것도 다 돈이다- 마시멜로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 아이들도 나도 대만족. 서로가 말은 안 해도 각자 힘든 점이 있고 상처와 슬픔이 있지만, 그 와중에 함께 하고 추억을 쌓아가면 있던 정은 더 진해지겠지.
이모를 보낸 슬픔이 가득한 마음도 불멍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 자체로 있을 수 있어 훈훈했다. 이렇게 조금씩 마음속 불씨를 살려내는 2023년을 보내야지. 사진으로 확인한 얼굴에는 예전과 다른 활기가 줄어들었지만, 한 걸음씩 또 그렇게 내딛다 보면 귀중한 시간이 쌓이겠지.
일상이 힘들고, 고맙고, 그렇게 지나가는 마지막 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