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동생의 요리
“누룽지 내가 꿇였다. 먹어봐라. “
사람은 흔히 본인이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한다고 쉽게 생각하기 마련. 누룽지를 좋아하는 동생은 어릴 적부터 밥보다 빵이나 군것질거리를 좋아했다. 그걸 지켜보는 어머니는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 하는 심정으로 걱정스레 바라보고, 나는 식구들 밥 먹을 때 같이 한 숟가락 떠야 정이 더 생기지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타고난 천성은 쉬이 바뀌는 게 아니어서 지금도 여전하다. 동생은 길거리 좌판에서 할머니가 뭘 팔고 계시면 마음이 동해 꼭 필요하지 않아도 검정 봉지를 들고 오고, 나는 그 몇 천 원에 인색하여(잔돈도 잘 없지만) 미안한 심정으로 조심스레 빈 손이다.
오늘 아침, 늦은 식사를 하며 누룽지로 끓인 숭늉을 건네는 동생을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삶이 음식에 들어있구나. 이혼 전 동생은 도박에 미쳐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일을 나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 누룽지를 끓여놓고 아침 대용으로 준비해 둔 채… 그래서일까? 가슴속 맺힌 것이 많아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서일까? 무언가를 씹고, 이를테면 누룽지 같은 것. 그런 것들을 통해 마음을 누루고 있었을까, 밥 안 먹는다고 핀잔주기에 바빴던 언니인 내가 미안해진다. 아이의 마음을 보지 않고, 본질은 잊고 또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쉽게 판단하고 배려 없는 말투는 언제쯤 고칠 건지. 가족이래서 더 막 하기 쉬운데, 참 난감하다.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밥도 한 그릇 먹었지만 그래도 동생이 건넨 숭늉을 열심히 먹고 있다. 어제 학원 아이들과 수업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떠오른다. 악다구니 쓰는 거친 아내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주는, 주인공 핍의 매형 조. 대장장이 일을 하며 형편도 넉넉하지 않음에도 처남을 살뜰히도 챙긴다. 마치 부모처럼. 그런 매형을 닮고도 싶어하지만 엄청난 유산의 상속자가 된 핍은 상류층의 풍습에 취해 매형을 무시하고…
힘들수록 가족끼리 뭉치는 게 힘이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휴일은 한 상에 둘러앉아 온 가족 함께 먹기 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된장국에 녹아 있다. 하숙생처럼 배고프면 올라오는 조카들도 할머니표 된장국을 보자마자 맛있겠다며 잘 먹는다. 신기하다. 다이어트하느라 밥도 잘 안 먹으려는 중학생과 입 짧아 많이 못 먹는, 이제 초등을 벗어나는 둘째 조카도 이 된장은 군말 없이 잘 먹으니.
우리 음식은 준비 과정이 길다. 최대한 좋은 재료, 값과 신선도, 원산지를 따져 준비한 후 손질하고 씻고 자르고 이런 자잘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 장은 오래 발효될수록 깊은 맛이 돈다. 마트에서 거의 사 먹다가 온라인 공동구매로 오래 발효시킨 좋은 된장을 샀더니 아이들이 말을 안 했는데도 국물색을 보자마자 맛있겠다고 소리친다. 숨길 수 없는 게 음식 맛인가. 아무튼 양파, 버섯, 두부, 호박 등 부재료가 많을수록 여러 가지 맛이 더해지고 가족끼리 충돌했다 풀었다 울었다 웃었다, 서로 마음 상해가며 맞추고 이해하고 조심하는 모든 삶이 여기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요리하고 치우는 과정이 고되다. 막돼먹은 인간인지, 이기적인 인간인지, 현실적인 인간인지, 그 다인지 모르겠으나 감탄하고 느낄 줄 아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남은 음식은 마저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