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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r 06. 2023

행복은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

petit bonheur


먹기 좋게 김치를 잘게 잘라놓으셨다

"이건 점심때 데워 먹어라."

어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역이나 콩나물을 이용하여 자주 음식을 만드신다.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비교적 저렴한 먹거리라 그런지는 몰라도 밥상에 미역이나 콩나물이 자주 등장하는 걸 봐서는 그렇다.


미역국을 한 솥 가득 끓이시면 식구들은 몇 번 먹고는 외면한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남겨진 미역국 안에 떡을 넣고 '미역 떡국'을 만드신다. 그러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하루 세끼 음식을 준비하고 먹이고 치우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해보면 그 고충을 안다. 나도 설거지 몇 번에 울화가 치미는 것을 경험한 뒤로는 어머니의 수고스러운 상차림에 대해 불평불만을 함부로 못 하게 되었다.


오늘 감동한 부분은 김치였다. 아무렇지 않게 점심으로 준비해 주신 '미역 떡국'을 데워 식탁에 올리고 반찬으로 좋아하는 잔새우 간장 조림과 김치통을 꺼내 뚜껑을 열다 갑자기 울컥! 김치가 가위로 잘려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말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먹기 좋으라고 저런 수고를 하시는구나. 그냥 사랑의 마음으로, 식구들 생각해서 저렇게 준비해 두셨구나. 한평생을 자식 먹이고 손주들까지 먹이는데도... 가끔은 힘겨워하시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이렇게 준비해 두고 외출하셨구나.


이 매거진은 어머니의 마음과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반찬과 간식, 상차림을 휴대전화로 사진 찍으면서 결심한 바가 있었다.

'먼 훗날, 어머니가 많이 노쇠해지면 내가 찬거리를 마련해야 할 수도 있고, 그녀가 이 땅을 떠나면 구체적인 기억이 필요하다. 우리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사랑으로 사셨는지 조목조목 증거물로 남겨두자.'

얼마 전 부크크 출판사에서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이란 책을 냈다. 이모의 죽음 후 상실감에 빠져 우울해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살아서 무언가를 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조급함과 낭비해선 안 된다는 무언의 질책이 나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 후속 편은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오늘 점심 김치를 보자마자 바로 시행하기로 한다.


이 매거진의 주제는 다이소에서 몇천 원 주고 산 숟가락, 자기로 만든 손잡이에 있는 글귀에서 잡았다.

"PETIT BONHEUR" 쁘띠 보네르~ 아마 이렇게 발음하는 것 같은데,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니 프랑스말로 '작은 행복'이라고 한다. 예쁜 말이다. 큰 행복이 아니고 작은 행복이라니, 얼마나 소담한가. 행복 말고도 행운이나 기쁨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니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 행운, 기쁨이 앞으로 쓸 글의 소재인 셈이다.


빨간 바구니 속 숨겨진 보물은 무엇일까요?

작년 겨울부터 윗집에서 건네다 준  애플망고로 비타민 충전 잔뜩 했는데, 며칠 전 선물 받은 애플망고로 후식까지 풍성하다. 애플망고의 효능을 찾아보니 피부 미용에도 좋다니 일석이조다. 사실 어머니와 함께 피부과 치료를 받은 지 삼 개월이 지난 터라 병원 다니며 치료받고 약을 먹는 것도 지겨울 지경인데 이웃의 선물이 효과를 더해주니 이 또한 감사한 일!


평소 비싸서 사 먹기 힘든 열대과일은 윗집에서 선물해 준 덕분에 원 없이 먹었고, 하늘 같고 태산 같은 어머니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덕분에 여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어머니뿐이랴. 친구들이, 동료들이, 지인들이,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여러 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건네는 응원과 격려와 따뜻한 말들 또한 일상의 에너지원이자 큰 힘이 된다.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종종 풀어놓을 작정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니까. 애써 배려하고 세세히 신경 써준 부분들을 다 파악하지 못해도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감사의 제목을 더하기 위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기억 속에 고마운 추억을 남겨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먹으려고 이 글을 시작한다.

이제 봄이다. 벚꽃도 피기 시작할 테고, 미세먼지도 계속될 테고, 중간고사도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감사한 순간을 붙잡아 매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 또한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 '찰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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