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각 봄을 피우다
이름은 라넌큘러스. 꽃말은 색깔별로 다르지만 '매력, 매혹, 비난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장미 못지않은 화려한 낱낱의 꽃잎이 층계처럼 하나의 송이를 감싸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못 보던 꽃이 작은 병에 담겨있다. '이 꽃이 어디서 났지?' 하는 마음으로 거실에 나가니 식탁 위에 작은 꽃병 속, 봄이 찾아와 있다.
몇 년 전 화훼기능장식사 시험을 치고 자격증을 취득한 동생은 그 경험을 살려 양묘장에서도 꽃을 가꾸는 일을 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꽃을 심는 일과 더불어 비닐하우스 속 벽돌을 날라 바닥을 고르고 힘겨운 노동과 밭일에 몸과 마음이 시들어가던 그 시절이 매운맛으로 남아 씁쓸하다. 얼마 전 병원을 가며 가로수 사이 화분에 심긴 팬지를 보고 사다가 살며시 심어둔 모양이다. 동생은 평소 원예에 관심이 많아 장날에 작은 화분을 사는 일이 잦다. 엄마와 나는 집에 살림살이가 너무 많아지면 관리하기 힘들다며 말려도 취미이자 힐링이 되는 일이기에 동생은 꿋꿋하게 사다 나르며 집안에 작은 정원(?)을 가꾸고 있다.
애써 심은 팬지와 풍성한 라넌큘러스를 잘라 소담한 꽃다발을 만들어놓은 동생의 솜씨가 나쁘지 않다. 동생이 만들어 놓은 꽃꽂이에서 팬지 하나를 뽑아서 내 방에 슬며시 가져다 놓은 어머니의 손길도 감사하다. 힘든 가정형편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꽃을 사고 가꾸고 보고 다듬으면서 작은 행복을 발견했다.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보니 눈금 있는 소주잔에 꽃을 담아왔네... 뭐 꽃이 담겼으니 소주잔이 꽃병이 된 셈이다.
"매서운 겨울을 살아내고 추위에 항거하듯 용감하게 잎을 내민 모든 가지를 안아주고 싶은 봄이다. 봄은 귀환을 환영하는 계절이다.... 봄은 이어달리기의 계절인데 우리는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앞만 보고 내달린다."
- 토바 마틴 글, 킨드라 클리네프 사진, <<오감을 깨우는 정원생활>>, 김희정 옮김
겨울을 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찬사인양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우리에게 한숨 크게 내쉬며 주변을 돌아보라고, 이어달리기를 잘하려면 틈틈이 잘 쉬어야 한다는 무언의 격려 같은 꽃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인생은 언제 꽃 피우려나 싶어도 반드시 꽃 피우는 봄은 찾아온다. 그렇게 믿으며 살고 싶다.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팬지가 우리 집에 있으니 봄이 자신을 생각해 달라며 찾아온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꽃을 보기만 할 줄 아는 나와 달리 동생은 서슴없이 가위로 이미 피어난 꽃줄기를 싹둑 잘라 어린 꽃봉오리들에게 고루 영양이 가도록 해준다. 잔인한 행위 같지만 하나의 꽃만 보지 않고 식물 전체를 보며 균형을 맞춰 가는 과정 중 하나이다. 아직 피지 않은 꽃들도 자신의 개화를 기다리며 봄을 맞을 준비 중이다. 긴 겨울을 지나 고마운 봄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분주한 순간을 뒤로 하고 잠시 꽃을 보며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