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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r 30. 2023

정성을 들이면 기쁨이 커진다

나만의 보물찾기

꽃이름은 모르지만 싱싱해서 오래가는 고마운 아이

오늘처럼 기온은 따뜻한데 하늘이 흐리면 기분도 덩달아 가라앉기 쉽다. 그럴 때는 '나만의 보물찾기' 놀이를 한다. 말만 거창하지 그냥 일상을 견디어나갈 힘을 기르기 위한 일상 속 몸부림에 가깝다.


봄이 되니 집안 곳곳에 있는 난과 작은 나무, 식물들이 기지개를 켠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금작화(애니시다)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 꽃은 겨울 내내 시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푸른 잎사귀를 여기저기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제 좀 잘라야 하지 않을까요?"

키만 너무 큰 것 같아 잘라야 할 것 같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큰일 날 소리란다. 나도 못 알아본 꽃대가 차곡히 올라오더니 저리도 예쁜 꽃망울을 여기저기 보여주었다. 꽃말도 겸손이다. 게다가 달달한 꿀 같은 향기를 내뿜는다. 기특한 친구다.



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 중 여리한 분홍 튤립은 시들면서 잎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어느 순간 후드득 떨어져서 아쉽지만 버렸다. 그런데 같이 꽂혀있던 이름 모르는 꽃은 너무 싱싱해서 아직도 방긋 웃고 있다. 집에 있는 라넌큘러스와 축 처진 가지를 잘라낸 이름 모를 꽃을 작은 잔에 담아 오래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원체 게을러 식물에 물 한 번 주는 것도 쉽지 않은 나지만, 선물 받은 꽃이나 좋아하는 꽃은 각별한 신경을 쓴다. 시들어 잎이 떨어지면 그중에 한 잎 고이 건져 책 속에 넣어둔다. 그러면 책 읽을 맛이 더해지고 책을 읽고 숨겨진 꽃잎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이건 동생 솜씨다!

동생은 나랑 성격도 기질도 많이 달라 화려한 꽃다발을 잘 만든다. 꽃을 잘라 담는 것만 봐도 사람의 성격이 나타나다니... 동생이 만든 꽃꽂이는 꽃이 화려하고 풍성하다. 종류도 여러 가지 색깔로 아낌없이 넣었다. 나는 손이 작고 너무 튀는 것은 지양하므로 꽃꽂이도 주인 닮아 수수하고 담백한 모양새다.


"자신의 강점을 발견했으면 그것에 집중하라."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17 세기가 낳은 최고의 작가로 평가되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한 말이다. 동생은 저 말대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해 가며 집중하는 것 같다. 온 집안의 꽃송이가 언제까지 무탈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까지 전염되어 집안의 꽃들이 속으로 주인의 손길을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지나 않을까, 갑자기 조금 미안해진다.


어렸을 적부터 입이 짧고 먹는 즐거움에 크게 탐닉하지 않아서인지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일이다. 입맛이 없고 의욕이 생각지 않을 때 써먹는 방법이 '나만의 밥상 차리기'이다. 자신이 손님인 것처럼 스스로에게 최고(?)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기운을 주고 싶을 때는 계란 요리(?)를 한다.

집 테라스, 조카가 학교에서 방울토마토를 심었던 플라스틱 통 안에서 자라는 파를 잘라 기름 속에 던진다. 파 기름을 내려는 것보다는 계란만 있으면 없어 보일 것 같고, 벌써 꽃대가 올라오는 파를 얼른 먹어치우려는 속셈 때문이다. 밥이 담긴 그릇에 어머니가 해놓은 콩나물 무침을 얹고 그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린다. 참기름과 깨를 뿌려 비벼서 열심히 먹는다.


계란찜은 그나마 즐겨하는 요리 중 하나인데 이번에도 파를 왕창 사용했다. 모양은 자유롭다. 울퉁불퉁 분화구 저리 가라지만 정성을 쏟은 스스로의 요리다. 정성을 들이면 무언가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성취감도 조금씩 늘고, 실력도 커지니까. 열심히 만들고, 먹고 힘내라는 무언의 압박이자 '나'에게 차려주는 상 같은 느낌! 오늘 점심도 콩나물계란비빔밥으로 해야겠다. 중간고사 대비, 성적을 올려야 하는 강사의 부담감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레시피다. 오늘 하루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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