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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pr 29. 2023

반대 정신 가지기

약자를 수호하라!

인생의 숙제


"적금, 연금, 보험, 대출...

현재의 나는 늙고 힘없는 나의 노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현재의 나는 지금... 행복할까?

진짜 운 나쁘면 말이야, 미래고 뭐고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 백원달 글/그림, 인생의 숙제


리뷰를 보고 중고로 산 책이다. 요즘 돈이 부족하니까 중고로도 책을 구입한다. 도서관을 오갈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4월은 누군가의 말대로 잔인한 달이다. 한 달 내내 시험대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끌'해서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나가고 늘 피곤하다. 그러던 찰나에 리뷰나 독자평이 일관되게 "내 이야기 같다, 나랑 똑같다."라고 되어있길래 내용이 어떠하길래 그럴까 싶어 주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읽는 내내 '내 이야기' 같고 정감 어린 그림과 현실감 있는 그림, 그림과 그림 사이에 숨어있는 시가 마음에 와닿아 공감이 되었다. 예전에는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아 어떻게 하면 자살하지 않고 어머니와 잘 살 수 있을까, 숨 쉴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면 지금은 늘어난 식구를 책임지는 가장 아닌 가장으로 삶의 무게가 점점 더 버거워진다. 신기하게도 몇 년간 수업이 별로 없어 월세도 밀리고 힘들었는데 식구가 늘어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자, 수업도 수입도 늘어났다. 마치 하늘이 "돈 들어갈 데 많지? 그러니 네가 더 벌어야 해."라고 말해주듯. 그러나 여전히 살림은 빠듯하다. 조카들 학원비에 월세, 식비, 보험 등 꼭 들어갈 돈만으로도 통장에 월급 들어오자마자 나갈 구멍 천지다. 아하, 이렇게 '늙고 힘없는 나의 노예'로 달려가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게 아닐까 오싹하기까지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몽롱한 기분으로 몸도, 마음도 무겁다.


필연적인 건망증


잔인한 4월이었어도 감사하게 5주 차 토요일인 오늘은 수업이 없다. 물론 시험 끝나고 반갑게 올 녀석들도 아니겠지만, 한 달에 네 번 하는 고등부 수업이 5주 차라서 아이들도, 나도 다 같이 휴식이다. 몇만 년 만에 오는 황금 시간이냐, 잠이나 실컷 자자. 어젯밤 그렇게 마음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우리 집 똥강아지 조카가 배가 고프다며 뭔가를 먹겠다고 한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김치찌개를 데워주고 밥은 조금 담아준다.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니 그래도 흐뭇하다. 그래, 계획대로 되는 건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그래도 내일 쉬잖아.

오전에 밥을 하려고 쌀을 밥솥에 안치고는 취사 버튼 누르는 것을 깜빡. 6시간 후 겨우 구출!

알람도 끄고 소리도 끄고 마음 놓고 잠들었는데 8시쯤 부스럭거리는 소리. 창문 위 비가림막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깬 똥강아지. 아휴, 늦잠 자기 글렀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이게 뭐야. 짜증 섞인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누우니 울컥! 잠도 내 마음대로 잘 수 없구나. 모든 양육자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미혼인데.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서글픈 마음과 고된 마음이 뒤섞여 머릿속이 숭숭하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이 바로 '약자'이다.




약자를 수호하라

우리 집 약자, '똥강아지'가 좋아하는 치킨

굿윌스토어라는 회사는 사람들에게 물품을 기증받아 저렴한 가격으로 장애인들이 판매일을 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직원이었던 서진교 목사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며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만 장애인파송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분의 책, <<작은 자의 하나님>>을 읽고 우리 집에서 작은 자가 누굴까 생각했다. 나는 작은 자를 약자, 낮은 자로도 바꿔 보았다.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누군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사람은 약자가 아닐까? 아직 청소년기인 조카들도 작은 자이고 약자이다. 결혼해서 열심히 살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동생도 작은 자이고 약자이다. 어머니는 어떠한가? 살아생전 평생을 노름에 중독된 남편 아래 숨죽이며 자식 키우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셨는데 그녀도 작은 자이고 약자이다. 그럼 나는? 낮은 자이고 작은 자이면서 약자이다. 하지만  때때로 큰 자이면서 강자가 된다.

뚜벅이인 나는 걸어 다니다 보면 신호등에 설 일이 많다. 눈을 들어 건너편을 보면 병풍처럼 산이 보인다. 속으로 기도를 드린다. '저 산처럼 큰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산속에 깃드는 생명을 품는 큰 그릇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일까? 시나브로 작은 자가 주변에 모여있네? 이게 기도의 응답? 무심코 기도한 내용이 직접 실현되다니.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반대 정신


그 뒤부터 힘들 때마다 주문을 왼다. 나는 강자다. 도움이 필요한 우리 식구는 약자다. 이순신 장군처럼 속으로 외친다. '약자를 수호하라!'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손이 있고 걸어 다닐 발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조카들에게 밥을 차려줄 수 있고, 누군가 내게 하소연을 하면 잘 들어주라는 신호구나. 팔은 저린데 걸려온 전화를 쉽게 끊을 수 없는 이유다. 속이 답답하고 억울하여 지지해 달라고, 자기 심정 좀 알아달라고 외치는데 "제가 바빠서 이만..."하고 끊을 수도 있겠지만, 좀처럼 그 소리가 안 나온다.

동생을 군에서 잃고 안정된 직장도 그만두고 선교사로 헌신했던 지인이 예전에 반대 정신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힘들 때 반대로 생각해."

전혀 기쁨이 없는 상황일지라도, 반대 정신으로 대처하면 다시 나아갈 힘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그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아도 반대 정신을 무기 삼아 지칠 때도 이렇게 일할 수 있어 다행이야, 감사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또 움직여지는 것이다.

'아휴, 피곤해. 지겨워. 또 시작이네.'가 아닌 '운동 삼아 슬슬 청소나 해볼까, 식구들이 힘든 대신 내가 먼저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구나, 힘들어도 이게 가족이지.' 이런 마음으로 슬슬 시동을 걸고 두뇌를 유연하게 만드는 거다.

언제 갖다 놓았는지도 모를 포도, 위층 산타가 살며시 놓아둔 선물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고 도우면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돌고 돌아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 그런 경험을 종종 했다. 누군가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했는데 꽃다발이 온다든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적은 돈을 후원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수입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외형을 보아도 하늘은 중심을 본다고 믿으니까.

이렇게 벌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황금 같은 휴일이 지나간다. 그렇지만 조카가 좋아하는 치킨을 사줄 수 있었고,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글도 적을 수 있고,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겨 장바구니에 책도 담아놓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감사할 게 많은 일상이다. 약자를 계속 수호할 수 있도록 체력과 역량이 강화되길! 피곤 지수는 올라갈 수 있겠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오늘부터 기도를 바꿔볼까? '하나님, 제가 큰 산 같은 그릇은 많이 버거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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