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무 한 그루
시험 기간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지라 일상이 기쁘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듯 굳은 마음에 우울 지수 상승.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수업이 끝난 후 버스를 탔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 창가에 앉아 무심코 바라본 눈에 들어온 것은! 세상에나, 이런 캔버스가 다 있을까?
손가락을 붓 삼아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가며 전시회에 걸린 그림처럼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 아직 마음속에 그림에 대한 열망이 다 죽지 않았구나.' 한글을 다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유치원 모래밭에,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눈으로 따라 그리던 기억, 연습장 한 권을 금세 갖가지 드레스를 입은 공주 그림으로 채우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냥 그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교과서 귀퉁이에, 종이에, 바닥에, 무언가에 수없이 표현하고 그리고 싶어 했다. 본능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바로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교과서에 낙서를 하는 내게, "이러면 평생 못 고친다!"하고 뭔가 모를, 기분 나쁜 말을 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나쁜 일이라는 듯이. 그 친구는 예고를 가기 위해 그림을 공부 중이었는데, 자존심 강한 나는 친구에게 보여주듯 끊어버렸다. 그리는 행위를. 물론 공부는 내가 더 잘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는 행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3 때 큰 용기 내어 아버지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딸의 마음이나 성향은 전혀 아랑곳없이 그쪽 분야는 공부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안 된다는 단정적인 대답만 돌아올 뿐. 기껏 꿈을 내뱉었는데 아버지란 사람에게 그런 부정적인 대답을 듣고 얼마나 절망했던지. 물론 우리 집 형편은 스스로 잘 알았지만, 그냥 공감을 원했던 것 같다.
현실을 누가 모르냐? 그저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게 생겼으면 우선 귀 기울여 듣는 게 우선 아니냐? 아버지는 그런 의미에서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 사택에 살아서 그런지 큰 나무들로 만들어진 울타리를 보면 설레기 시작한다. 벚나무로 둘러싸인 집. 봄이 되면 '빨간 머리 앤'이 살 것 같은 하얀 꽃대궐, 잔디를 깎고 올라오는 풋풋한 여름 향기.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무를 보고 있으면, 숲을 거닐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저절로 힐링이 된다. 요즘은 이팝나무가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 내에 하얀 별 같은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 얼마나 눈부신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정원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꼭 가드닝으로 이팝나무와 겹벚꽃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싶다. 꿈도 야무지셔라!
수업할 아이를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장난 삼아 노트에 그린 그림들이 다시 마음을 건드린다.
'너 아직 안 죽었네. 그림에 대한 마음이 죽은 줄 알았더니 꿈틀대고 있구나!
당신의 마음속에도
어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을 거예요.
그 나무가 잘 자라서 단단히 뿌리내리고
서로서로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 코리나 루켄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던 마음이라면 잘 살펴보자. 우리 '마음속 어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지. 그 나무가 '뿌리내리고 서로서로 연결되기를' 스스로 응원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힘이 솟아날 것이다. 그림을 좋아했던 어린아이가 마음문을 닫고 수많은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처럼. 마음속에 심긴 씨앗은 쉽게 죽지 않는다. 도전하고 시도해 보고 그냥 하다 보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될 테고, 작은 기쁨도 누리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