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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pr 18. 2023

우울할 때면 글을 쓴다

일상을 바꾸기가 너무 힘든 사람들

어느 가수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행복하면 노래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노래에 깊이 몰입해야 할 때는 일부러 슬픈 감정에 빠져 사는 편이에요." 오늘처럼 날이 흐리면 예민한 감각이, 감기에 걸려 안 그래도 연약한 육신이 극도로 예민해지기도 하고 축 늘어지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된다. '써야만 한다'가 아니라 '쓰게 되는 것'이다. 

걷기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도 전전두엽을 자극하는 일이라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앞부분에 위치하며 결정하고 계획하는 기능, 즉 심리학에서 집행 기능이라고 부르는 정신 작용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지식백과가 알려준다. 어릴 적부터 실존과 생존을 걱정하고 커야 했기에 기사에서 일상의 어려움으로 힘겨움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사연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힘들게 일해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전세사기를 당하다 유서를 쓴 어느 청춘의 사연이 남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가 아닌 월세에 살고 있고,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는 집세를 몇 달이나 밀린 채, 주인의 눈치만 살피며 걸음조차 조심하던 시절도 있었기에 그들의 서러움이 남 같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시험기간, 학원에서 아이들은 여기저기 콜록거린다. 5~10분마다 코를 풀러 나가는 아이, 기침을 연달아하는 아이, 감기에 걸려있으면서도 반팔을 입고 오는 아이, 요즘 같은 황사가 극성인데도 덥다고 창문을 열어달라는 아이... 그들 속에, 공부하기 싫어 죽을 것 같은 아이들 속에 공부를 시켜야 하는 나의 숙명이란! 졸지 마라, 문제 풀어라는 잔소리를 쏟아가며 목은 더 아프고 이래저래 감기몸살에 걸려 몸도 마음도 엉망이다. 

"언니는 학원 안 다녔는데 공부 잘하지 않았어?"

"중학교 입학 전에 몇 달 과외했지."

"나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서 눈을 안 떼고, 숙제는 무조건 했다."

조카의 학원을 옮기며 학원비는 더 비싸지고, 그럼에도 응용은커녕 기본 문제도 혼자 풀기 힘들어하는 조카를 보며 걱정이 되는지 동생이 몇 마디 풀어놓는다. 

없는 집안 형편에 맏이라고 어머니는 무리해서 과외를 시켰지만, 워낙 단체활동을 싫어하는지라 그것도 두어 달 하고 그만두고 중학교 때는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잘 따라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아빠의 노름이 더 심해져서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사는 일이 더 지옥 같았고, 공부고 뭐고 그냥 알바를 하며 눈앞의 돈 걱정을 덜기 바랬는데, 그것도 극렬하게 반대하는 어머니 덕분에 손에 물 덜 묻히고 지금껏 살아온 셈이다.


강의식 학원에서 과외식 학원으로 조카 학원을 옮기며 예전보다 십만 원가량 더 올라간 교육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벌면서도 도대체 언제까지 돈 걱정을 하며 살아야 되냐고? 이 땅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족을 돌아보면 더 이상 푸념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런데 9천만 원에 가까운 전세자금을 다 돌려받지도 못하고 밀려드는 고지서 독촉장에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하... 그 마음을 감히 어찌 다 짐작이나 하겠냐만, 그래도 이렇게 우울할 때는 글로써 풀어내지 않으면 살아갈 기운이 안 생기는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처럼 인간은 살아가는 게 이다지도 모진 일이란 말인가. 힘겨운 일이란 말인가. 오, 주여... 


중학생 조카는 매운 것에 약하므로 혼자 간장 소스이다.

고등학교 시절, 독감에 걸려 생사가 오락가락할 때도,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무식하게 집에서 며칠이나 끙끙 앓을 때에도 내 기도는 오직 하나! 

"가족을 잘 먹여 살릴 수 있게 저를 살려주세요. 아버지, 건강을 되찾게 해 주시면 열심히 돈 벌어 어머니 보필하겠습니다."였다. 이제는 그 범위가 어머니를 뛰어넘어 동생과 조카들까지 확대되었지만 말이다.

'빌런'처럼 우리를 힘들게 했던, 생전 육신의 아버지는 하늘로 먼저 갔지만, 천사 같은 어머니가 곁에 있어 힘들어도 끝내 살아남았다. 죽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끝까지 살고자 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동생의 이혼 후 상처 많은 그 아이와 맞추느라 부딪치고 이리저리 할퀴고 찢어진 마음은 하늘만 아실뿐. 롤러코스터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 상에 둘러앉아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한 국수를 먹는 순간. 또 감사하게 된다.



조카들이 오고 나서 고기 먹을 기회가 많아졌다.

조카들은 고기를 좋아하기에 어머니는 동생이 오고 나서 고기를 사는 일이 많아졌다. 그전에는 명절맞이 기념처럼 큰일이 있어야만 주로 먹던 음식을 아이들을 위해 반찬비가 많이 들어도 어머니는 더욱 먹거리에 신경을 쓴다. 물론 아이들이야 배달 음식에 길들여져 집밥이 귀한지도 잘 모르고 매번 똑같은 반찬은 안 먹는, '배가 부른'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몸무게도 늘고 키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이렇게 신경 써서 먹여도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니 '육아'를 하는 모든 분들은 감히 얼마나 대단한 내공을 쌓으며 위대한 업적을 하고 계시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게으른, 거북이 이모인 나는 돈 걱정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정리하며 최애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여주인공이 한 말.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거야!)을 상기하며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내일 걱정 내일 하고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하라고. 그러자, 그렇게 하자. 걱정한다고 키가 크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초코 콘아이스크림 먹으며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을 즐기자.


요즘 일본 방사능 오염수 문제와 관련하여 또 걱정이 된다. 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러는지, 정말... 심각한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지만, 지금은 이런 책에만 관심이 가니 어쩔 수 없다.


"또 51세 피폭자 농민의 아내는 남편이 나가사키에서 피폭되어 간장애가 있긴 하지만 파인애플, 사탕수수, 논, 가축을 내버려 두고 히로시마 원폭병원까지 간다는 건 사실상 경제적 자살이라고, 후쿠기 나무아래서 말에게 풀을 뜯기면서 말했다."

- 오에 겐자부로, <<오키나와 노트>>, 삼천리, 2017


경제적 자살 문제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기를, 없을 수가 없는 사회 구조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미약한 바람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연약한 인생들인 우리는, 그래도, 그래도 같이 슬퍼하고 같이 우울해하고 같이 힘을 모으며 같이... 죽지 말고 끝까지 같이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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