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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May 31. 2023

뻔한 레퍼토리지만, 중요한 이야기

학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선생님, 아이가 엄마 앞에서 죽고 싶다고 하는데... 그게 엄마 앞에서 할 말이..."


어느 학부모님의 상담 전화. 속으로 꾹꾹 참던 아이가 엄마와 대화 도중에 터진 말이다. 어머니도 울컥해서 울먹거린다. 자신의 아이가 살고 싶지 않다는데 기뻐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공부는 공부대로 시켜야 해서 아이가 싫어하는 영수 학원은 달래서 보내셨다고 한다. 속으로 탄식했다. 그냥 아이 소원대로 몇 주만이라도 쉬게 해 주시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학원에서, 교회 주일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학원 강사로, 논술 선생님으로, 독서 지도로 여러 가지 자리에서 일을 했다. 지금 곁에는 청소년 조카도 자라고 있다. 제자 중에는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사는 아이들도 꽤 된다. 그러나 그 시기에만 나타나는, 그 시절에만 보이는 아이들의 특징이 있고 아이들과 소통이 안 되는 양육자들이나 공부나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십 대를 볼 때 안쓰러울 때가 많다. 사실 현장에서 교육비를 받고 수업하는 내게 고객은 학부모님이다. 그들이 지갑을 여는 이들이기에 면전에 대고 쓴소리 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래도 학부모님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 자리를 빌려 글을 쓴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부모님들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양부모가 있는 경우 대신 한부모나 조부모 가정도 많다. 실제 양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소통이 막혀있거나 부모로서 자격 미달인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아이가 건강하게 커가는 것은 실로 기적적인 일이다. 장애를 가졌거나 어디가 아픈 자녀를 돌보는 이의 심정은 같은 처지에 놓인 자들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다행히 건강한 아이라도 대부분의 양육자들은 공부를 강요하신다. 강요가 아니라 전부이다. 물론 아이들이 앞가림 잘하기를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게 아이들의 소원이라기보다는 부모님들의 욕망이 아닌가. 아이들 성적 올려야 하는 학원 강사로써 이런 말이 위험하긴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나는 속으로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저녁도 못 먹고 이전학원에서 다음학원으로 와서 앉아있는 아이들. 배가 고파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면. 머리에 뭐가 들어가긴 할까? 기운이 저리도 없는데. 그래서 종종 사탕이나 젤리를 건네주면 미소가 번진다. 그게 정직한 모습이지. 성적 이전에 밥 걱정이라도 해주시면 좋겠는데. 아이에게 종합비타민이라도 먹이시는 걸까? 아이 팔뚝이 저리 약한데. 키가 더 커야 하는데. 오지랖이 발동해 공부를 떠나 아이의 삶이 걱정스러워 쓸데없는 질문을 이것저것 하기도 한다.


전교 1등을 해서 특목고에 들어간 아이는 첫 시험에서 낭패를 본 모양이다. 그러면 모든 정보과 인맥을 동원해서 아이의 성적을 올릴 특급대책을 세우신다. 그러면 속으로 또 걱정이다. 우선 아이는 괜찮을까? 공부하는 즐거움을 맛보아야 되는데 다음 단계를 위한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한다고 괜찮을까? 아이가 저 정도 따라주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 문제는 부모님들의 교육철학과도 연계되어 있고 내가 뭐라고, 남의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 떠들 자격이 있겠는가. 그래도 아이들이 먼저이고, 그 아이들이 걱정된다. 아이들은 친구와 한 번 싸우는 일도 엄청 큰 일이다. 학교에서 계속 얼굴을 맞대고 생활해야 하는데 친구와 다투거나. 절친들이 어느 날 등을 돌리면 세상이 끝나는 막막함이 생기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죽고 싶다고 했을까? 부모님들이 변하면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변할 텐데. 오은영 박사가 아무리 외쳐도 직접적인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는 심각성을 모르겠지.

아이가 죽으면 다 끝입니다. 옥상에 올라가기 전에. 가출하기 전에 아이들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낼 때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그냥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숨구멍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오죽하면 사교육 담당하는 학원 선생이 이런 글까지 쓰고 있을까요? 왜 안 보이십니까? 왜 안 들리십니까?


사춘기들의 객기가 아니다. 단순한 감정 변화가 아니다. 아이들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저 지금 숨 막히는데. 힘든데 조금 쉬어가면 안 될까요? 공부, 공부, 그놈의 공부. 일류 아니어도 다 먹고살 수 있습니다.

"넌 왜 올백 맞고 싶은데?"

"세상이 놀랠 거니까요?"

올백을 맞으라고 누가 그랬을까? 부모님이지. 올백을 맞아야만 정상이라고, 잘 된다고 은연중 강요하고 요구한 까닭이지. 그런다고 창의력이 저절로 생기나요? 어느 때는 가르치다가 내가 숨이 콱콱 막힌다. 아이들은 그냥 강요하는지, 자신을 걱정해서 말하는지 진심을 안다. 사춘기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그냥 바람이 들었고, 공부가 마냥 싫어서 핑계를 된다고 생각하면 말이 안 통한다. 아이들의 마음도 모르면서. 친구 보기에 자존심 상해서. 옆집 아이는 좋은 학교 갔으니까. 왜 그런 이유로 아이랑 상의도 없이 양육자 마음대로 진로를 강요하고 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고집하는지. 그런 부모님은 다 전교 1등 하셨나요? 아니잖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이가 세상을 떠나면 다 끝입니다. 곁에 있을 때 칭찬 한 번 더. 눈이라도 한 번 더 맞추고 사랑해 주세요. 그런 다음에 함께 공부를 해나가야죠. 문제 터지고 저한테 다독여달라시면. 부모님은 그대로인데 저한테만 부탁하시면 아이가 부모님만 더 싫어하게 되죠. 제발 건강하게 곁에 있는 게 기적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죽었다 살아나지 않아도. 지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해야 합니다. 밥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데 그것도 못 하냐는 이상한 논리로 아이들을 손익계산하지 마세요. 그러라고 태어난 존재들 아닙니다. 이 세상에 숨 쉬고 있을 때 제발 잘해주십시오. 조금 더 나은 학교 가면 다 되는 거 아니잖아요. 공무원 하다 죽는 사람도 많고요. 일류대 가서 퇴학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제발 아이들 마음부터 치료하고 공부를 들이대셔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문제로 힘들어하는지 대놓고 말을 해주는데도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학부모님들, 성적 이전에 아이들 마음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탄탄해지면 아이들 스스로 움직입니다. 제발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이 아이들 웃는 얼굴 한 번 더 보는 게 행복 아닙니까? 너무 앞서 나가 인생 전체를 짜 맞추지 마시고 아이들을 믿어 주세요. 믿음만큼 성장할 수 있고, 진심으로 사랑하면 아이들은 다 느끼고 돌아옵니다. 제발 성적, 공부 강요하기 이전에 아이들 마음부터 만져주세요. 사랑하는 자녀를 남의 손을 빌려 치료하기 전에 먼저 손 내밀어 잡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지친 상황이 이어지고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 그는 잠시 휴식과 비움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반드시 돌아가 갈등과 어려움을 이겨냈다. 만약 클림트가 아테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다시 채우기 위해 언제나 비웠다는 것이다.
- <<위로의 미술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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