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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n 12. 2023

행복하게 사는 비결

느림의 미학, 중독 대신 건강한 일상 살아가기

빠른 사회의 문제점


"자극을 좇고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공허감을 느끼는 것은 중독자의 뇌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초강력 합성마약에 중독된 것이 아닌데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의 뇌가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의 말이다. 뭔가 나쁜 일을 한 게 아닌데도 우리는 자극 없이는 살기 힘들고, 도파민을 끊임없이 생성해 내기 위해 소비 사회의 현대인들은 진정한 자신을 잃은 채 살고 있다.

평소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때 게임에 시간과 체력을 심하게 소비한 적이 있다. 예전에 '레알팜'이라는 모바일 게임을 학원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특급 작물을 5개 이상 모바일 앱 내에 있는 농장에서 생산해 내면, 자신의 집으로 실제 농작물을 배송해 준다는 게임의 규칙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소소한 재미를 위해 한 일이 그곳에서 상추를 심고 물을 수시로 주느라 앱에 계속 접속을 해야 했다.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비닐하우스도 짓고 여러 가지 아이템을 사고. 특급 농작물 또한 실제 농사처럼 가상공간에서조차 얻기는 쉽지 않았다. 비교적 쉬운, 아니, 제일 쉬운 상추를 심고 키우느라 수시로 물을 줘야 해서 아침저녁으로 앱에 들어가느라 시력도 저하되고 어느새 폐인모드로 살고 있는 나를 자각했다. 얼마나 한심하던지. 그런데 지금은 스트레스 해소용 굿즈 쇼핑이라는 새로운 중독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디어 중독, 현란한 자극 끊기


이것은 스마트폰으로 인한 자극에 익숙해져,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수시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페북이나 인스타 친구들 소식을 쳐다보고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을 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미디어 중독! 내가 중독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술, 담배, 마약 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물론 그것은 심한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이지만. 우리는 커피에서부터 컬렉션 수집이나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한 아이템 구매 등 수시로 광고에 노출되고 자극에 민감하며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별생각 없다가도 누가 하면 나도 해볼까 하며 살고 있다.

신기한 게 미디어를 많이 한다고 행복한 게 아니다. 사실 휴대전화를 당장 사용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업무상 관계에 놓여있는 이들은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휴대전화를 몇 시간만이라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릴 수 있다. 생각을 전환할 수 있다. 세계적인 CEO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최대한 휴대전화를 늦게 사주고 독서를 강조하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까지 발달해서 문명 없이 살기는 힘들지만, 병이 들거나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자연으로 찾아가는 원리는 단 하나. 세속을 떠나 현란한 자극을 끊는 것이다. 자극이 없으면 처음에는 공허한 것 같고, 심심한 것 같지만. 산골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거나 새소리 들리는 숲 속에서 몇 분간 있어보면 기기 소리와 다른 안정감이 든다. 사람도 흙으로 돌아가서일까. 우리는 자연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


느리지만 건강하게


하동 매실 20kg 인터넷 주문으로 담근 매실청. 문명의 편리함도 부인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해마다 매실청을 담그고 있다. 예전에는 농협이나 마트에 가서 눈으로 매실 상태를 확인하고 구입한 후 무거운 짐을 집까지 옮겨야 했다. 어머니와 나는 '뚜벅이'이므로, 게다가 차비 아낀다고 택시 대신 버스를 타야 해서 두 사람이 이리저리 손에 들고 어찌해서 집까지 노동이었다. 평소 숨쉬기와 걷기 외에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는 우리는 가사 노동이 운동의 역할까지 겸한 셈이다. 지금은 인터넷 주문으로 집 앞까지 택배가 오니 기사님이 고생하지만, 우리는 편안하다.

집에 도착한 매실 향이 그윽하고 물에 씻고 꼭지를 따서 물기를 뺀다. 매실과 동일한 용량으로 산 설탕을 한가득 부으면 끝!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눈 속에 갇혀 동글동글 싱그런 물방울무늬를 만들어내는 매실. 발효되는 시간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느리지만 건강한 식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고되어도 행복하기까지 하다.


웬 궤짝일까 궁금했는데 동생이 고안해 낸 텃밭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의  꿈은 마당 있는 예쁜 집. 마당이 있으면 꽃도 심고 채소도 심고 조카들이 줄넘기나 운동도 할 수 있다. 의자와 파라솔을 놓고 얼음 동동 매실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동생은 화훼기능장식사 자격증이 있고 나와 달리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정원을 가꾸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마당이 없으니 꿈을 실현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궤짝이 보이는 거다. 뭐지 했는데 며칠 후 답을 찾아냈다. 궤짝의 쓰임새는 텃밭을 가꿀 커다란 화분(?). 동생은 건물 벽에 바짝 붙여 다른 집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상추, 치커리, 바질, 방울토마토 등 갖가지 채소를 재배 중이다. 역시 꿈이 있으면 이루어진다.


지지대는 어디서 구입했는지 용하다, 내 동생!

이렇게 차려진 줄도 몰랐는데 실외기가 설치된 벽면에 나란히 놓여 빗줄기 맞으며 잘 크고 있다. 고양이가 싫어한대서 어머니는 커피 가루를 텃밭 귀퉁이에 놓아두라 하신다. 꾸준히 읽고 싶거나 관심 가는 책을 사는 것처럼 동생은 꾸준히 키우고 싶은 작물과 꽃을 사고 시든 것은 과감하게 자르고 새 촉이 나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 역시 자격증 공부 헛되이 한 것은 아닌가 보다. 꼬마 바람개비는 어디서 구해서 꽂아두었는지 신기한 세상.



행복하게 사는 비결


앞에서 말한 서울아산병원 정희원 교수는 소비자본주의가 가속노화를 일으키는 방식이 중독 과정과 같다고 설명했다. 또 경북 의성군에 있는 천주교의 한 공소에서 이춘자 수녀가 기획해 펴낸 단행본 <<힘내! 너만 아픈 게 아니야>>라는 책도 어려움을 극복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두봉 주교의 인터뷰 기사에서 알게 되었다.


지지대를 세워 반듯해진 스파티필룸. 흰 꽃이 청초하다. 우리네 삶에도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행복은 주관적이다. 외부 조건에 달리지 않는다. 돈 가졌다거나 건강하다는 것,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에 행복이 달리지 않았다. 남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만족감, 행복이 따라온다. 어려움 없이 나만 생각하면 행복할 수는 없다."

위의 말은 소년기에 2차 대전을 겪고 한국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에 와서 햇수로 70년째 천주교 성직자로 계시는 두봉 주교의 인터뷰 기사에서 인용했다. 그는 남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 해야 자기가 행복하고, 스스로 행복을 누려야겠다고 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공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서 윗집 아주머니는 농사지은 채소를 가끔 현관 앞에 두신다. 그러면 우리도 빵을 사서 드리거나 반찬을 조금 더 많이 해서 윗집 문 앞에 놓아둔다. 꼭 누가 가져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암호 마냥 알아차린다. 즐거운 나눔이고 행복한 일상이다.

동생과 조카들의 합류로 먹거리가 더 풍성해진다. 물론 식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이 신비롭고 다채롭다. 어제는 어머니와 조카들 여름용 새 속옷과 동생이 일터에서 일할 때 신을 슬리퍼를 구입했다. 예전보다 생활비가 많이 들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이는 돈이기 때문이다. 지인을 만날 때도, 아이들에게 뭔가를 줄 때도 내 돈이 들어가면 왠지 뿌듯하다.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구나 감사하고 뭔가 마음에 차오른다. 큰 것을 줄 수는 없어도 소소해도 귀한 것들이 일상에 가득하다.


오늘부터 인터넷 검색보다 책을 보는 시간을 늘릴 생각이다. 직접 한 끼를 준비해서 차려 먹을 수 있는 건강과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는다. 생명 주신 고마운 일상, 미디어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몇 가지 규칙을 정해 마음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인터넷 검색 시간은 한 시간 미만으로 줄이기

 눈 떠서, 눈 감기 전 마음속으로 기도드리기

주문한 감사 노트가 오면 감사 제목 적고 성찰하기

독서 시간 지금보다 두 배로 늘리기

먼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하기보다 현재 해야 할 일에 충실하기

오늘은 누구를 어떻게 도울지 가끔이라도 생각해 보기

식사를 하고 제자리에서라도 5분 이상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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