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이대로(just as I am)
이 없으면 잇몸
만약 이 글을 어머니가 본다면 조금 곤란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기에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하련다. 페북 계정을 해킹당하고 뒷날 주민등록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부24'에 접속, 부랴부랴 분실 신청과 재발급 신청을 하고.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사건이 터져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말을 맞은 지난 토요일, 오전부터 지속된 수업으로 피곤함이 온몸으로 퍼져있던 상태. 학원에서 돌아와 집을 정리하고 다 같이 저녁을 먹고 그런대로 평온함을 만끽하려던 찰나.
"내가 봐둔 게 있는데..."
"네?"
"쓸만하더라고. 딱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몇 마디를 하고서는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 어느 아파트 앞에 수거하라고 내놓은 책상 위 책장을 눈여겨본 거다. 비실거리는 나를 두고 동생과 어머니는 그 밤에 무거운 책장을 어찌해서 낑낑대며 들고 왔다. 그동안 책장을 사기가 부담스러워서 택배 온 박스에 몇 권의 책을 넣어 정리해 놓은 어머니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결심을 야무지게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와 동생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실물을 마주한 나는 영 탐탁지가 않았다. 내 방에 놓을 가구조차 선택권이 없이, 디자인과 용도에 상관없이 그저 그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자체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볼멘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서 결국 어머니에게 불경스러운 투덜거림을 발사. 책은 여기저기 놓여있어야 더 자주 손이 가고 보기도 쉬운데... 굳이 이 늦은 시각, 피곤한 몸으로 책 정리를 해야 하다니. 내 팔자야! 이런 소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자기만의 공간으로 승격시키기(굿즈 활용, 충동구매는 조심!)
어머니는 다 같이 어려운 시절 태어나, 불평불만보다 감사거리가 더 많은 사람이다. 절약이 몸에 베여 있어 멀쩡한 책장을 두고 그냥 넘기기가 힘들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나는 아니다. 자신의 공간에 계속 놓여 있어 쳐다봐야 하고 사용해야 하는 물품을 당사자 의사에 상관없이 어머니 마음대로 배치, 정리하는 게 속 불편하다. 이게 뭐라고, 그냥 넘겨도 되는데 지난 서러움에 감정 폭발! 이런 것으로 주말을 망쳐야 되나 싶은 심정부터 책은 내가 보는데 왜 어머니가 저리도 신경을 쓰나, 까지 이해불가. 마음을 달램 겸 좋아하는 것으로 방을 꾸미기로 했다.
평소 문화생활을 자주 하기가 힘들다. 뚜벅이이고, 한번 찾아가려면 대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포스터를 사서 군데군데 붙여둔다. 나만의 컬렉션이다. 가령 레몬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정원이 없는 집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과실수를 가꾸기가 힘들다. 대신 레몬 나무가 한가득 그려진 포스터를 벽면에 붙여준다. 귀여운 마스킹테이프를 기분 좋게 뜯어 포스터를 붙이고 감상하면 레몬향 같은 즐거움이 솔솔 살아난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받은 귀여운 메모들은 화장대 거울에 붙여두고 그것을 받았던 순간에 사로잡힌다. 그러면 기분이 새로워진다. 이런 메시지를 받았구나.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감사가 새록새록 올라온다. 보기에 따라 지저분할 수도 있지만, 선물이나 편지를 준 이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감사의 순간을 되새기는 과정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 을 넘어 존중하기
약한 관절로 딸에게 책장을 만들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정서가 그것을 포용하지 못했다. 어머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직도 이렇게 성정이 살아있구나, 갈 길이 멀구나 싶다.
그러다 어젯밤 잠들기 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머니와 함께 있을 시간이 길어야 20년이 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시간도 길다면 길 수 있다. 그러나 어릴 적 봤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나이를 먹고 노쇠해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만약 어머니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찔했다. 그 누가 나를 생각해서 여기저기 놓인 책을 정리해 주며 뭐 하나라도 더 주려고 밤이나 낮이나 고민하고 애태울 것인가. 눈물이 흘렀다.
있는 그대로 인정만 하는 것은 부족하다. 인정을 넘어 존중까지 가야 진정한 효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반성을 하고 어머니와 건강하게 오래 동행하도록 기도를 드렸다.
살면서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가족이어도 다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린 충돌하고 상처가 생긴다. 취향을 우선하기 전에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한 마음을 먼저 살피고 이해했다면 쓴소리 대신 감사하다고 했을 것이다.
불편을 감수할 용기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 불편한 일입니다. 삶을 옥죄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는 살아오면서 가난이란, 물건을 적게 갖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이해인, <<인생의 열 가지 생각>>
불편한 상황을 만났을 때 도망가지 않고 기꺼이 대면하고자 하는 것이 어머니의 자세라면, 나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 버리고 쉽게 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같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내가 중심이 되어 이기적인 마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다른 이를 위해 불편을 감수할 용기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속 끓이고 힘들어했던 모습도 인정한다. 매번 피어 있을 수만 없는데. 질 때도 있는 것을. 살아가는 것은 불편을 감수할 용기를 키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건을 교훈 삼아 자신을 돌아본다.
고사성어 와신상담처럼 땔나무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의지를 다지지는 못하지만, 불편함이 생겼을 때 바로 부인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들여다볼 용기를 키워야겠다. 그나저나 아직 미디어 절제는 잘 되지 않는다.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는 걸로...
(뒷 이야기) 얼마 전 해킹당한 페북 계정은 업체를 통해 깔끔하게(?) 삭제했다. 친구들의 목록에서 어느 순간 이전 계정이 사라졌으니까. 그동안 조금씩 연을 맺은 사람들과 시간, 자료들은 공중분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그 일 이후 로그아웃을 충실히 하며 귀찮아도 2차 인증을 걸어 보안을 강화했다.
참고로 페북계정을 해킹당했을 때는 돈이 들어도 업체를 통하는 게 빠른 해결이 될 수 있다. 직접 고객센터를 통해 신분증을 보내도 똑같은 회신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분증은 여권이 가장 빠른 듯하다. 꼭 여권이 아니어도 사진이 선명한 게 일처리가 빠르다. 업체에 따라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실제와 동일해야만 가능하다는 데가 있고, 그렇지 못해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한 곳도 있었다. 여러 군데를 상담하고 결정하는 게 좋다. 물론 신분증 증명만 잘 되면 직접 고객센터를 통해 요청해도 가능은 하지만 시일이 걸리고,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해 답답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