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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n 26. 2023

물건 줄여나가기

깨달음과 실천은 다른 문제지만...

밥을 먹고 지압매트를 밟다 거실을 둘러본 순간, 뭔가 스쳐갔다.

'나중에 어머니가 안 계시고 혼자 남으면 이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처치할까?'

지금이야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니 이것저것 양념이며 반찬통, 김치 담글 때 사용하는 큰 양동이를 비롯하여 잡다한 물건이 많지만. 혼자 있으면 이 물건들은 무용지물. 조금씩 물건을 줄여나가야 세상을 떠나기도 홀가분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이모의 죽음 이후 인생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수시로 몰려드는 생각들과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나이 듦의 증거인 것인지, 철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던 차에 오늘 읽은 이해인 수녀님의 책 속 어느 글귀가 책상 앞으로 붙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그것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부자가 된다."


이해인 수녀님이 속한 수녀회 어느 수녀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물품 중에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의 말을 종이 상자 뚜껑에 붙여둔 게 있었나 보다. 짐이 많다고 느끼는 마음속에 들어온 문장이라 재미있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럼 이제 진정한 부자의 경지로 접어들었나 싶은데 카톡에서 주문한 물품이 배송되었다는 메시지가 연거푸 날아온다. 이런! 아직 멀었군...


기준은 없다. 그저 상자에 들어가면 그뿐!

고등학교 시절 조용한 나를 어느 친구는 수녀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 보니 검소한 삶을 실천하는 수녀들의 삶은 어머니가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소유욕에, 표지가 예뻐서, 궁금해서, 독서 모임에 필요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책이 넘쳐나자 어머니는 어느 날 택배 상자나 라면 상자를 이용해서 어머니표 책장을 만들고 계셨다.

책을 읽다가 소파나 바닥에 내버려 두니 지저분하고 청소하기도 힘드셔서 자신만의 대책을 세우신 듯. 그런 상자가 점차 늘어나더니 1, 2층을 이루고 상하좌우 여러 면을 이어 하나의 책장이 되어버렸다.


사기만 하고 안 읽은 책도 한가득! 인간의 욕심이여~

사실 그전부터 어머니는 책장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거리에 내놓은 정체불명의 책장부터 중고센터, 할인을 하는 것 같다는 길거리의 가구점까지. 그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딸이 움직이지 않자 영 안 되겠는지 책장으로 변한 상자의 수가 많아지더니, 빈티지 아닌 빈티지 행복(?) 책장이 되어버렸다. 책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쏠린 적도 몇 번 있긴 하다.

그 뒤부터는 책의 높낮이와 두께를 고려해서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이해인 수녀님의 책을 읽다 보니 어머니가 수녀회의 수녀님 같아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살림의 고수요, 검소한 생활의 달인이구나. 상자 책장을 우습게 보면 안 되겠네, 반성이 된다. 책만 사고 정리도 제대로 안 하는 못난 딸을 용서하소서!

촌스럽고 낡은 상자가 뭘 하겠냐고 허투루 생각한 지난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친구는 지우개 하나 함부로 사지 않고 자신의 집을 살 때까지(그때는 전세로 살았던 것 같다) 아끼겠다며 야무진 말을 했었다. 아마 4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지우다가 으스러지고 가루가 생기면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신상 지우개를 사려고 했다. 그 순간 친구가 말리며 자신이 쓰던 지우개를 내밀었다.

"이거 줄게. 당분간 충분히 쓸 수 있어. 새로 사기엔 아깝잖아."

어린 나이에도 절약 정신이 가득했던 친구가 낯설지만 존경스러웠다. 물론 친구가 준 지우개가 마음에 안 들어 새것을 산 기억이...


주변을 둘러보면 사실 소유욕으로 산 물건들이 많다. 지금 책상 위, 수납장에 담긴 필기구만 해도 수십 가지는 되는 듯하다. 예쁘다고, 특이하다고, 다음에는 안 나올지 모른다며 온갖 이유를 둘러대며 충동구매한 굿즈가 수십 가지이다. 놓여있는 책도 다 안 읽었는데, 새로 읽고 싶고 궁금한 책은 왜 이리 많으며. 안 그래도 힘든 지구를 더 힘들게 하는 나란 피조물까지. 그렇지만 조금씩 물건을 줄여나가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물건들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도 없다. 죽을 때 다 들고 갈 수도 없는 물건들을 보물인 양 간직하며 살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들을 먼저 간 분들이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100년도 채 못 살면서도 백만 년은 살 것처럼 이것저것 욕심내는 인간들. 이러면서도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주문하려고 대기 중인 나. 못 말린다, 정말! 사면 읽고 조카들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우선 합의를 보자...


* 덧붙이는 말: ‘지구에서의 하룻밤’ 작가님의 달콤 살벌한(?) 후기 덕분에 물건 줄이기 한 가지 비법이 생각났어요.

1. 굿윌스토어에 기부하기.

쓸만한데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을 굿윌스토어에 기부한다. 쓰레기는 절대 안 되고요. 누군가 저렴한 가격으로 사가는 거니까요. 장애인 직원들이 직접 판매를 하는 곳이니 더 좋은 물건들이 재활용되도록 꼭 쓸만한 물품들만 기부해 주세요.

굿윌스토어를 검색하시면 사이트가 뜨니 참고하세요.


2. 수녀님들의 생활패턴 따라가기.

이해인 수녀님의 책을 읽다 보니 수녀님들은 물품을 많이 구매하지도 않으시겠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엽서, 책, 꽃 등)들을 선물하시는 듯. 새것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물품은 뜻깊은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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