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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Oct 12. 2023

오늘을 환대하라

황금률의 마법 체험하기

치즈 레터링 찻잔 식기세트


자주 만나면 일 년에 한두 번, 가끔 보면 몇 년에 한 번이 될까 말까 한 그런 지인이 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격하게 축하해 주는. 꼭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친절이 탑재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여성으로. 나는 미혼, 그녀는 기혼으로 환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 오가는 말속에 통하는 마음이 있다. 가족에게조차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마음결 따라 하소연하며 서로 힘내기를 응원하는 그런 마음.

명품 저리 가라 하는 가을 하늘 아래, 한글날을 맞아, 아니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바깥 풍경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얼마나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면 자리를 옮겨서도 끝나지 못할까? 끝낼 수 없을까? 안쓰럽고 애잔했다. 한 여성이 한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문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일일이 소리 내어 속을 알아달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들어주는 게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눈을 바라보고, 표정을 살피고, 집중해서 들어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카톡 알림이 떴다. 우리 집 내막을 아는, 들은 지인이 선물을 보냈다.


치즈 레터링 찻잔 접시 세트. 접시 하나는 금이 가서 화분 받침대로 쓸 예정. 색감의 온기처럼 쏟아진 햇볕조차 감미롭다.

엽서를 동반해서 상자 하나씩 종이로 고이 싸서 리본으로 정성껏 포장된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그런데도 접시 하나에 금이 갔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 누군가는 다른 접시를 써야 하지만. 그 주인공은 어머니가 자처하겠지만. 가족이 따뜻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그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세상이 말하는 명품은 아니지만, 명품보다 더한 마음이 더해진 귀한 선물이다. 단순한 그릇을 보낸 게 아니라 가족 모두를 응원한다는 자신의 메시지를 동봉했기 때문이다. 아직 겨울이 되지도 않았는데, 새 봄을 보여준다.


라면을 끓이는 이유

얼른 씻어 사용할 순간을 기다리는, 성질 급한 나!

봄을 안겨주었으니, 그 봄을 사용할 시간!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끓이는 이유는 환대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 무슨 환대냐 싶지만. 계란을 풀고 파와 당근을 썬다. 건강은 신경 쓰여 물은 언제나 정량보다 과하다. 물이 끓을 동안 부재료를 준비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자신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환대 의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사실 면 종류를 좋아하는 이유도 크다.  충수염으로 수술한 이후 라면과 과자를 줄이고자 했지만, 조카의 합류로 있는 대로 그냥 먹고 있다. 


오늘 라면 종류는 안성탕면! 동생과 조카들은 물을 많이 넣어, 내가 끓이는 라면을 멀리 한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라면을 먹다 보니 문자가 왔다. 몇 주 전 내년 다이어리를 구매할 겸 온라인 쇼핑으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을 주문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실수를 해서 송장번호가 두 개나 떴다. 제품을 이미 받은 나는 다른 하나를 취소 요청했으나 상대편의 실수라서 똑같은 제품 도착. 반품을 요구했더니 배송 실수라서 반품이 안 되어 수거가 불가능하다고.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냥 사용하라고 한다. 하나의 가격을 내고 한 개를 덤으로 얻었다고 기쁘지가 않았다. 그래서 계좌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자신의 실수이니 그냥 쓰란다. 예전 같으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그러나 학원의 아이들이 떨어지면 내 월급도 깎이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나는, 실수로 물건 하나를 날린 상대편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이트에서 같은 제품을 다시 주문하고 물건을 보내지 말라고 하니 감격에 오타 섞인 문자를 보내온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괜히 선물로 쓰라고 하기는. 자신의 실수이니 그 누구도 원망 못 하고 얼마나 속이 아플 것인가. 내가 천사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했을 뿐. 황금률을 한번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 까닭이다.


오늘을 환대하라


어릴 때 아프면 어머니는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원 가서 치료 잘 받으면 엄마가 소꿉놀이 세트 사줄게."

그 말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병원을 다녀오면 어머니가 약속했던 선물은 볼 수가 없었다. 자식이 아프니까 급한 마음에 어머니는 우선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약속부터 내세우기 바빴다. 자식의 치료가 우선이니까. 그때 알았다. 우리 집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어렸지만 어머니가 약속한 선물을 정말 사줄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다. 그래도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니까 떼를 쓸 수도 없었다. 꼭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못 받은 섭섭함은 속으로 삼켜버리고...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중에서 -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 것은 부모님만큼 나이가 들어가면서이다. 먹을 것에 심하게 집착했던, 생전 아버지의 허했던 속을 어릴 때는 알 수가 없었다. 늘 공주님 하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 우리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만큼 마음에 큰 구멍이 생긴 줄은 밥벌이하며 생계의 고단함을 느끼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오늘을 살면서 스스로를, 이 시간을,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길 바라며 친절을 베풀며 환대하는 그 모든 순간을. "천천히, 서서히, 문득" 살아가며 느끼고 있다. 

How are you?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 환대를 받고, 누군가를 환대한 기적 같은 날이다. 누군가는 기적을 믿지 말고 기적에 의지해서 살라고 한다. 도깨비방망이를 마냥 기다리는 대신, 황금률의 마법을 기대한다.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흔한 말도 의지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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