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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Nov 11. 2024

느려도 괜찮아!

우리 집 느림보 거북이, 바로 나야!

콩나물이나 쪽파와 달리 도와드리려고 해도 고난도라 결국 어머니 혼자 손질하셨다.

"흑진주 홍합이다!"

"이게 흑진주 홍합이에요?"

"아니... 그냥 내가 이름 붙인 거야."


새까만 열매처럼, 아기의 까만 눈망울처럼 윤기 나는 홍합을 딸은 손 다칠까 봐 홀로 다 손질해서 삶은 어머니.


첫째 조카를 빼고(조카가 조개류를 안 먹는 이유는 앞에서 설명. 어릴 적 유치원 사건으로 인해) 얼큰한 홍합 육수를 즐기는데, 어머니는 식구들이 먹기 좋게 한소끔 끓인다. 그다음, 데친 홍합을 먹으라고 초장과 같이 탁자 위에 둔다.


양파와 파도 같이 우러난 국물은 환절기 감기에도 좋다.

해산물은 냄새부터 좋아하는 나이기에, 보양식이다. 육류를 싫어해서 고기 냄새가 나면 짜증부터 일어나는데, 해물은 냄새만 나도 기분이 좋아지다.

어머니가 삶아놓은 홍합을 건져 먹는 재미도 있다. 어제는 다른 식구 먹을 틈도 없이, 막내 조카가 한가득 쌓인 홍합을 다 발라먹었다. 조카와 같이 산다는 것은 먹거리에 있어 부지런하지 못하면 입에 들어갈 음식이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키가 부쩍 커진 막내 조카 입에 들어갔으니 아깝지 않은 것으로!


꽃모양 그릇에 담겨 수제비꽃이 되었다

해물을 싫어하는 첫째 조카를 위해 할머니는 홍합은 육수 재료에서 빼고 담백한 두부를 잘라 넣었다.

"이거 나 때문에 분리한 거예요?"

자신을 배려해 준 손길이 고마운지 할머니께 확인차 질문을 던지더니 기분 좋게 먹는 조카.

어머니는 주말 한 끼,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행복해하신다. 각자 스타일도, 식성도 달라 그러지가 쉽지 않지만. 어제처럼 다 같이 식사를 한 날은 그렇게 뿌듯해하신다.

일흔이 넘은 나이, 집안일이 힘에 부쳐 감기가 빨리 낫지 않는 어머니. 몇 해 전 이모 돌아가셨을 때 상심한 나머지 피부를 뒤덮은 모낭충이 면역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바짝 쓰고 일찍 가시려는 거 아니죠? 몸을 아껴야 오래가죠. 이제 좀 몸을 아끼세요."


내 말에 웃으시는 어머니. 그녀를 위한 보상은 쇼핑이다. 마땅히 살 게 있든 없든, 어머니 눈치 보고 기분 좋게 해 드리려고 집안 여자들 대동해서 올리브영으로 출동했다.


가면 다들 살 게 생긴다.

어머니는 클렌징폼과 스킨을, 동생은 눈화장에 필요한 용품. 잘 꾸미지 않는 나는 요즘 사진 속에 보이는 얼굴이 초라하고 불쌍해 보여 펄 들어간 핑크톤 크레용 섀도 하나를 골랐다. 1000원이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표 때문에 나도, 동생도 똑같은 제품을 골랐는데... 글쎄, 그럼 그렇지. 섀도 가격이 아니라 연필깎이가 천 원이었던 거다. 계산할 때 동생은 골랐던 그 제품을 취소했다.

할머니, 엄마, 이모 도우미로 제품을 안내해 주던 조카는 여드름이 고민이라 이모가 성분 좋다고 권하는 크림 대신 본인이 직접 테스트해 보고 마음에 든 수분 크림과 립밤 하나를 골랐다.


나다, 거북이! 느림보 거북이!!

화장품 가게에서 이미 십만 원 넘는 지출을 하고 그냥 집으로 오지 못한 여성들은 집 근처 빵집에 들렀다.

동생과 나는 차에, 어머니와 조카는 빵집에 들어가 한참 나오지 않는다. 리뷰에 수제쨈을 준다는 조카는 할머니와 신나게 빵을 고른 후, 리뷰까지 올리고 결국 수제쨈을 획득했다. 할머니와 방문했다고 덤으로 호밀빵까지 받아왔다.

문제는 SNS에서 본 연탄 빵을 먹고 싶던 나는 조카가 고른 거북이 빵으로 그 빵을 놓쳤다는 것이다.

평소 집안에서 동작이 느리다고 어머니가 핀잔 삼아 부르는 '느림보 거북이'가 별명인데, 귀여운 것을 선호하는 조카가 거북이 빵을 심지어 세 개나 사려고 했다는 것이다. 연탄 빵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사진으로 찍어보니 영락없는 거북이!


이러니 부자 되기 힘들다. 힘내라고 화장품을, 귀엽다고 빵을 사는 집안이니...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 느리게 가도 행복하면 됐다고 정신 승리법을 활용해 본다. 부자는 아무나 되나? 그냥 가족끼리 웃고 맛있게 먹고 즐거우면 됐다. 느림보 거북이, 느려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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