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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야, 풀 먹어!"

선택은 각자의 몫이기에

by 윤작가

지난 2월, 산부인과 초음과 검진 결과,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데... 5년 전 맹장이 터져 복막염 때문인지 유착도 너무 심해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어둡고, 환자의 마음도 낙심한 나머지 집에 와서 눈물이 터졌다. 소식을 들은 멘토 언니가 자신이 다니는 한의원에서 8 체질 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얼마 전 시골쥐가 한양까지 다녀왔다. 결과는 금양 체질. 간이 약해서 고기를 먹으면 소화시키지 못하니 모든 고기류는 해로운 음식이 되고, 뿌리채소도 안 맞으니 잎채소가 좋단다.

그동안 줄기차게 좋아했던 레몬류 과일도 맞지 않다고. 금양 체질에 자궁근종까지 있으니 카페인, 유제품, 견과류 등 간식으로 먹을 것도 거의 없다. 겁이 많은지라 우선 다음 검진 때까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최대한 멀리 하고, 이로운 음식을 가까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우리 집 염소가 되었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오이와 상추와 배추. 요즘 나의 반찬이다.

강한 향을 지닌 향신료, 고추와 마늘, 생강 등도 안 맞고 체질상 약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 밥순이라 불릴 만큼 좋아하는 밥과 해산물이 몸에 유익을 주는 음식이라는 사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양념이 든 반찬을 아예 먹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가려 먹는 중이다. 수술 예고까지 받은 몸이기에 3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은 해로운 음식을 멀리 하는 것.

"염소야, 풀 먹어!"

어머니가 우스갯소리 삼아 상추와 배추는 씻어두고, 오이는 잘라놓은 다음 딸에게 하는 말이다.

"저는 염소가 아닙니다."라고 발끈했지만, 풀만 먹어야 건강해진다니 염소 아닌 염소가 되었다. 육류파인 조카들은 이모에게 고기 냄새 피우기 미안하다며 앞에서 고기 굽는 것조차 조심한다.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식구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 같아 원래 고기를 싫어했으니 아무 상관없다며 안심시켰다.



단백질은 두부, 포도당이 맞아 생수에 타서 마신다.

과일과 채소는 몸에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는데, 8 체질 섭생표에서는 각 체질마다 몸에 해로운 음식과 유익을 주는 음식이 다 달라서 조금 난감했다. 딸기와 바나나는 금양 체질에 좋다길래, 바나나를 자주 산다. 밥과 바나나를 같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도 감소한다고 하니(TV 건강 프로그램에서 의사가 하는 말을 미용실에서 듣고 앎) 일석이조. 물론 아무리 몸에 유익을 주는 음식이라도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할 수 있다.

나야 어머니가 계시고, 이해해 주는 동생과 조카들 덕분에 순조롭게 식생활을 조절할 수 있지만, 외국이나 그럴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분들은 건강 관리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선 집안의 가장이자 정신적 지주로서 수술을 피하고, 건강한 몸으로 식구들 곁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라도 운동과 식습관에 최대한 신경을 쓰는 중이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 하나 공짜가 없다.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의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상추와 배추, 오이와 두부, 바나나를 선택한다.


"누군가 내 삶에 조약돌을 던지는가. 혹은 세상의 물결이 나를 흔들리게 하는가. 부레옥잠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든, 송사리가 되어 수면 아래를 헤엄쳐 나가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 이근후,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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