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
택배 유무를 알려주는 앱에서 알람이 도착했다. 누군가 만다린감귤을 보냈다는 것이다. 8 체질 검사를 하기 전에는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먹었다. 물론 싫어하는 것은 덜 먹고, 좋아하는 것은 더 먹고... 그런 차이가 있을 뿐. 못 먹는 음식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산부인과 초음파 검진 결과 자궁근종과 혹의 크기가 커졌다니 아무거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인의 권유에 따라 8 체질 검사를 했다. 그 말은 이제 못 먹는 음식이 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일 중에서도 감귤류, 제일 좋아했던 포도, 사과, 배 등이 안 맞다. 당장 먹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몸에 안 맞는 음식을 섭취해서 병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주신 마음으로 선물 주신 만다린감귤도 그림의 떡이 되었다.
복숭아, 체리, 키위, 파인애플, 참외 등은 체질과 맞아 먹을 수 있다. 어제 윗집에서 포도와 키위를 현관 앞에 놔두었길래. 감사하게 그림의 떡이 아닌 직접 맛볼 수 있는 실물이 되었다.
만다린감귤을 보낸 업체에 복수(?) 차원에서 오렌지를 지인들에게 보내려고 주문했다. 인생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당장 나에게 혜택이 되지 않아도 좋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축복하면 자신에게도 그 부스러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오렌지를 주문하고 나니 포도와 키위가 도착했다. 그림의 떡으로 가족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데... 먹을 수 있는 키위가 알아서 찾아오다니, 이 무슨 복인가!
평일에는 다 같이 모여 밥 먹기 어려우니 어머니는 주말 한 끼라도 한상에 둘러앉아 같이 먹는 것을 선호하신다. 시험 기간, 조카들은 학원과 스터디카페에 간다. 가기 전, 든든하게 먹이려고 고기를 준비한 어머니. 이 또한 그림의 떡이다. 어쩌겠는가. 금양체질은 간이 약해 밀가루와 고기가 안 맞다는데... 원래 고기를 싫어하니 유혹의 강도가 약하다. 먹음직스러워 한 입만 맛볼까 하다 참았다. 우선 건강해지고 나서 생각하자.
얼마 전 주문한, 새우젓과 멸치젓 들어간 새 김치와 된장찌개, 멸치볶음을 곁들여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이 조리하는 과정을 보며 익히기를 바라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못 가겠다.
지금은 사진 찍고 생각하고 글 쓰는 게 더 좋다. 언젠가, 어머니가 반찬을 못하게 되면 움직이지 않을까? 불효자식이다, 오늘도.
아무튼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예쁜 그릇에 담지 않고 김칫국물 묻어 있고 기름때 있어도.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좋다. 가끔은 근사한 곳에서 우아하고 멋진 만찬을 먹고 싶기도 하지만. 매일 그러고 살 수는 없으니까.
"자, 여기는 하트 뿅뿅, 엄마 밥상 미술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작품 해설을 맡은 일일 도슨트, 윤작가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시면 됩니다. 오른쪽 작품은 세 개의 전복 안에 삶은 전복을 잘게 썰어 가지런히 놓았죠? 동그란 그릇은 광안리 소품샵에서 직접 고른 거고요. 색감이 따뜻해서 무언가 위로가 필요할 때 이 그릇에 '플레이팅'하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 골라봤어요.
요즘처럼 일교차가 크고 감기가 잦은 날, 전복 한 접시 하면 보양도 되고, 기운도 날 것 같지 않나요?"
사람 사는 거 별 거 없다. 그러나 평범하게 사는 것 또한 별 일이다. 별다를 것 없지만,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는 매거진. 당신의 '소울 푸드(soul food)'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