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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빼면 시체!

진짜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by 윤작가
어느덧 그녀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계란죽!

몽글몽글, 색감도 예쁜 계란죽이 하루 걸러 올라온다. 어머니는 찬밥을 활용해서 죽을 자주 만든다. 소화도 쉽고, 어중간하게 남은 밥을 처리하는데도 좋다.

체질상 계란 노른자는 좋지 않지만, 그냥 먹고 있다. 참외도 단 맛이 나는 부분은 거르고 흰 살만 먹고 있으니 어머니는 살짝 불만인가 보다.

"이게 있어야 달고 맛있는데..."

죄송하다. 나이 들어가는 딸 봉양(?)하느라 고생 중인 어머니를 보니, 이제 밥상에 앉기도 죄송스럽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손수 깎아 과일을 먹기 좋게 준비해 주셨다. 보고 배운 게 무섭다고, 손님 오면 동생도, 나도. 부족해도 뭐라도 대접하려고 애쓴다.^^;;

금양체질에 맞는 키위는 윗집에서 줬고, 참외는 어머니가 사 왔다. 포도도 윗집에서 준 것이고, 만다린감귤은 지인이 선물로 보낸 것이다. 부자도 아닌데, 가끔 부자처럼 여러 가지를 먹는 호사를 누린다.

"우선 과일부터 먹고 있어라."

어머니는 뭔가 열심히 칼질 중이다. 그녀가 애용하는 식재료는 콩나물과 오이다. 그런데 맏이가 자궁근종으로 뿌리채소를 삼가야 해서 콩나물도 탈락됐다. 찬 성질을 지닌 오이는 도움이 되기에 이제는 오이가 식탁 단골손님이 되었다.



향신료처럼 맵고 강한 양념은 삼가야 하는데, 이러다 먹을 게 없을 듯하여 김치 종류는 맛있게 먹는 중

오이는 아삭하고 시원한 맛에 먹는다. 지인 중에 물컹하고 식감이 이상하다고 오이를 먹지 않는 이도 있다. 체질을 알고 나서는 고마운 식재료가 되었다. 화보에 나올 정도로 하얀 식기에 담긴 음식이 아니지만, 진정성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어머니의 음식도. 부족하지만 마음이 스며든 글도.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과 사건도. 모든 것이 진정성 빼면 시체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데는 나 자신이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다.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기에 경제적 효과를 내는 사람이 못 된다. 다른 말로 대세가 아니라는 거다. INFP, 가장 창의적이고 예술가적 성향을 타고났기에 대중적인 것보다 마음이 이끄는 것에 관심이 많다.


가령 그림책 한 권을 골라도 우선 그림이 마음 안에 들어와야 한다. 유명한 상을 타서가 아니라. 작가가 언론에 노출되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림을 위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공부했는지 본다. 그 면에서는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다. 단순히 전시회를 많이 하고 해외까지 잘 알려진 공인이라는 이유로는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외에서 공부를 했다는 이유에서 무조건 '오케이'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외로움과 낯선 환경에 직접 맞닥뜨릴 용기를 지녔다면 괜찮다는 말이다.


인스타에 너무 많은 피드가 올라와도 어지러워 팔로잉을 취소한다. 알려지지 않아도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면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내게, "샘은 특이한 책을 많이 보네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의 책도 모른 척할 만큼 고립적이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누가 인정하든, 안 하든... 주목하는 이들은 남다른 그들만의 '빛'이 나야 한다는 거다.


하얀 배경에 둘러싸인, 황금빛 노른자가 찬란하다!^^

내게 인생 첫 멘토였던 외할머니와 그녀의 따님인 어머니가 그런 존재이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이웃에게 친절을 베푼다. 지인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 먼저 인사하고, 작은 거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기 때문에 관계가 좋다.

"진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람들이 다 알아차리지 못해도 진짜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때로 공로가 드러나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철부지 딸에게, 돕는 자체가 널 위한 일이라며 하신 이야기다. 정작 딸에게 큰 가르침 주신 어머니는 감기 걸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세탁소 알바를 가셨다.

때로 베짱이 같은 나. 진정성 빼면 시체이기 때문에 SNS 답글 하나를 써도 길게 적는다. 일부러 그런다기보다 성향이 그렇다.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다 보면 길어진다. 진짜는 느리지만, 발효될수록 이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낙심이 되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해 보는 하루! 벌써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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