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날마다 새롭게

같은 재료, 다른 밥상, 새로운 자세

by 윤작가

어김없이 오늘도 밥상이 차려져 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도마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밥 꼬박꼬박 먹고 등교하는 아이였다. 군것질은 안 해도, 하루 세끼 밥은 무조건 먹어야 되는 줄 알고 사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덕분이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


어릴 적 어머니가 좋아했던 달걀.

어머니는 달걀을 사면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둔다. 그리고 물기가 다 빠지면 여러 개를 삶는다. 간식으로 챙겨두는 거다. 배고플 때 하나씩 까먹으라고.

어머니가 있을 때는 죄송한 마음에 노른자까지 다 먹지만. 그녀가 외출하고 없을 때는 흰자만 먹는다. 맛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체질상 노른자는 안 맞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애쓰는 것이다.

광택이 나는 달걀은 그 자체로도 예쁘다. 예전에는 이해를 못 했다. 무슨 달걀을 저리 많이 삶아두실까?

이제는 이해가 된다. 중요한 단백질 근원이자 요기를 할 수 있는 든든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자식과 손주들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 제일 중요한 사람. 어머니다.


어머니만의 응용법. 포도를 돌나물 국물김치에 넣어두셨다. 마치 과일청 같아 찍었다.

그녀는 가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포도나 방울토마토처럼 크기가 작은 과일은 국물김치에 넣기도 하고 샐러드에 넣기도 한다. 과일이 들어가면 상큼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싱그럽다.

설거지를 하려다 싱크대 한쪽에 놓인 국물김치와 과일이 왠지 좋아 보여 찍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냥 예뻐 보이고 좋아 보일 때. 그때가 그럴 때여서 별다를 것 없어도 우선 찍고 본다. 찍어두면 다 쓸 때가 생긴다. 지금처럼.

이러고 보니 달걀, 포도, 감귤... 다 동그란 아이들이다. 동글동글. 정확한 구 모양은 아니어도 곡선으로 이루어진 녀석들이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사진을 찍는데 큰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 게으른 탓도 있고, 에너지가 소진된 영향도 있다.



생선찌개

사실 생선은 비리기도 하고 먹기도 번거로워 즐기지 않는다. 바삭 구워진 생선구이는 좋아하지만. 국물 자작한 찌개류는 아직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살이 부스러지고 나서 보이는 생선 내장과 여러 가지 것들이 보기에도 좀...

아무튼 건강을 위해 애써 준비해 준 어머니 음식이어도 손이 잘 가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도 성의를 봐서 일부러 선물 받은 접시에 떠서 먹으려고 애썼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겼지만.



하트 뿅뿅 엄마표 쑥버무리

어릴 적 동생과 쑥을 캐러 나서는 길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칼과 바구니를 들고 야심 차게 나선다. 쑥을 캐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면 어떤 요리를 해주실까 내심 기대도 되고 소풍 삼아 나오는 마음이 자유로웠다.

지금은 환경오염으로 외부 음식을 먹기가 꺼려질 때가 많지만, 예전에는 지천에 식재료가 널려있기도 했으니까. 양도 얼마 되지 않은 쑥을 가져다 드리면 쑥국을 끓여주셨는데, 이것도 입맛에 안 맞았다.

색깔도 우중충하고 맛도 쓰고 무슨 맛으로 어른들이 먹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아가신 이모가 참 좋아하던 음식이 쑥떡이어서. 어머니가 손수 쑥과 쌀을 섞어 직접 만든 '쑥버무리'여서. 먹어봤다. 입에 착 감기는 맛은 아니지만 심심하니 괜찮다.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은 입에 달지 않아도,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 몇 개를 먹고 나서 세 개가 형제처럼 모여있고 왼쪽 여백에 아주 작은 하트처럼 쑥 흔적이 남아있길래 찍었다. 요즘은 안 예뻐도 그냥 찍고 본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가 떠오르면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을까 봐.


비슷한 식재료를 가지고 몇십 년간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그녀의 수고. 그 마음을 기억하는 방식은 새로운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입에 맞네, 안 맞네 따지기 전. 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고됨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기 위한 딸의 노력이다. 집안일을 하신 어머니는 단잠에 빠져있다. 요즘 자주 끙끙 앓는 소리를 내신다. 무릎이, 관절이, 뼈마디가 쑤시나 보다. 자주 철렁한다.

"어머니, 오래 사시려면 일 좀 그만하세요."

소용없는 줄 안다. 사랑이 식지 않으니까. 그 사랑 알수록 사진도 많아지고 글도 많아지겠지. 향신료 같은 강렬함은 없어도 심심해서 소화하기 편한 죽 같은 글이라고 마음대로 평가하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진정성 빼면 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