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하던 대로...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기가 꺼려지는데, 어머니가 쑥과 미나리를 넣은 전을 부치셨다. 또 밀가루를 먹었다.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는 세상. 어머니가 일부러 쑥과 미나리 듬뿍 넣어 만든 음식인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조카들은 시험 끝나 각자 놀러 가서 집밥을 안 먹을 테고, 동생도 집밥을 잘 먹지 않는다. 어머니 홀로 밥상 차리고 덮개로 고이 덮어 누군가 맛있게 먹고 감사 표현을 해주길 기대하겠지만. 그나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은 맏이만 조금씩 먹을 뿐이다.
손 큰 어머니와 입 짧은 딸. 이 조합은 무슨 이치인가. 치킨 한 마리 금세 먹어치우는 막내 조카와 달리 어머니가 반찬을 하면 일주일이 지나도 다 먹을 수가 없다. 집밥 챙겨 먹는 나 혼자서 매 끼마다 먹는다고 먹어도 양이 크게 줄지 않으니까.
국을 데우려고 가스레인지를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철 지난 달력을 프라이팬 덮개 삼아 직접 가위로 자른 어머니 모습이 상상이 되어 웃음이 나왔다. 보기에 따라 비위생적일 수도 있으나, 내게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웃음이 자꾸 나온다. 어릴 적 우리를 앉혀두고, 그녀는 가위로 인형 모양으로 종이를 오려 보여주셨다. 유치원 교사도 아니고, 그저 엄마가 자식을 위해 무언가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아련한지. 어린 나이임에도 우리를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사랑하는구나, 느꼈다. 달력 종이 덮개가 그 종이 인형 같다. 기름 얼룩이 지고, 조금 타기도 했다. 프라이팬 뚜껑 대신 종이 덮개라니!
종이 덮개를 열면 생선 세 마리가 나란히 놓여있다. 식탐이 없어도 어릴 적 큰 병치레 하지 않고 자란 것은 밥상에 늦게 앉아도 언제나 각자의 몫을 따로 챙긴 어머니 덕분이었다.
형제 많은 집안이 아니고 나와 동생, 둘이라서 그럴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숙제가 다 마무리되지 않았거나 글을 쓰거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밥 먹으라고 부르면 슬며시 짜증이 났다. 흐름이 끊어지면 힘드니까. 몇 번을 부르셔도 "네~" 대답만 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어머니는 답답해하면서도 늦게 오는 이까지 다 챙겼다. 지금은 언니 대신 동생이 빨리 밥상에 오지 않아 어머니 애를 태우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딸들이 다 이래서...
언니나 동생이나 집안일에 큰 관심이 없다. 설거지나 청소는 하지만, 자잘한 살림을 정돈하고 가꾸는데 딸 둘 모두 꽝이다. 동생은 바깥에 본인이 놔둔 화분 정원에 관심이 많다. 언니인 나는 맨날 책 읽고 글 쓰고 빈둥거린다. 그조차 매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황금연휴 때는 여행 대신 집에서 글 쓰거나 책 보거나...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간다. 날씨까지 흐리니 마음도 가라앉기 쉽지만, 이 아까운 시간을 버리듯 지나칠 수 없다. 읽던 책 마저 다 읽고, 생산적인 일 하나쯤은 해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고 안 할 확률이 높지만.
호화로운 풍경 속에 있지 않아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어도. 이렇게 글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다. 지인들 이야기로는 산불이 크게 났던 지역이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너무 참혹해서 눈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머니와 같이 안 입는 옷과 모자(안 입지만, 입을 수 있는)만 우체국 택배로 보내놓고 쉽게 잊고 있어 죄송스럽다.
더구나 오늘은 달력상, 근로자의 날이다. 노동절이다. 아픈 이들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얼마 전 해킹으로 우리 집에서 유심을 교체해야 하는 사람이 세 명이나 되는데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지만, 우선 책부터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