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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소진하게 만드는 것들

'기생충'은 멀지 있지 않아!

by 윤작가
오늘 마주한 아침상. 찬밥 활용 계란죽

어중간하게 남은 찬밥을 활용하는 어머니만의 비법. 계란죽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계란죽을 먹었다. 한입에 먹기 좋게 잘린 바나나와 삶은 계란은 덤이다.

계란죽 위에 마른 김을 손으로 잘라 고명으로 얹어놓았다. 그녀의 밥상을 당연하듯(?) 마주한다. 시집 안 간 큰 딸이나 인생 풍파 겪은 둘째 딸이나 어머니의 손길 없이 인간 구실 하기 힘든 기생충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동생네와 우리는 한 건물, 위아래 층에 거주한다. 동생은 일하느라 바빠서 집안일을 잘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평소 가사에 무신경한 편이다. 어머니는 자기 욕 듣는다고 이런 얘기조차 하지 말라고. 워낙 솔직한 윤작가인지라 그런 충고와 주의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쓴다. 이 글이 책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동생은 모를 테니까. 책으로 나온다면 그때 생각해야지. 아무튼 어머니는 두 집의 빨래를 하느라 고생이 많다.


자신의 밥은 먹다 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조카들 빨래를 하는 어머니. 우리가 기생충이 아니면 무엇이랴.

평균적인 어머니상에 비해 더 모성애 짙고 헌신 그 자체인 사람이라 그냥 지켜보지를 못한다. 밀린 설거지며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인 빨래를 보더니 출근한 동생을 대신해서 일을 시작한다. 물론 노동요 대신 잔소리는 수시로 발사!

조카들과 주일학교 교사인 내가 교회에 다녀올 동안 어머니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어머니의 몸을, 체력을, 에너지를... 갉아먹는 벌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도 아니건만, 언제까지 어머니를 힘들게 할 것인가.

동생도, 나도 언제 철이 들까? 조카들도 정리는 꽝이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밀가루 안 맞는 딸을 위해 메밀냉면. 많이 익은 물김치를 베이스로 오이와 지단을 고명으로 얹었다.

어김없이 교회에 다녀와 어머니가 해주신 점심상을 마주한다. 국물김치가 빨리 없어지지 않아 먹어치울 겸 메밀냉면의 육수로 쓰였다.

스승의 주일이라 우리 반 아이가 모든 청소년부 선생님들에게 줄 카네이션 화분-더 정확히, 추측해 보면 아마 아이의 학부모님이 사셨을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을 주길래 집으로 가져왔다.

어머니는 화분에서 두 송이를 잘라 동생네 탁자에 얹어둔다. 소주잔처럼 보이는 작은 컵에 담긴 꽃이 멋스러워 찍었다.


물에 담겨있으면 오래갈 거라며. 꽃을 받지 못하는 상대까지 생각해서 뭐라도 나누려는 어머니의 사랑.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조카 체육복을 빨면서 체육복 안에 든 카드도 같이 세탁해 버렸다. 평소 잘 잊어버리고 정리정돈에 약한 조카들은 할미와 이모의 잔소리에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로 가는데... 교통 카드 기능은 없다고 해서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받으라고 이야기했다.

단톡방에 자신의 영역은 제발 자신이 치우라고 잔소리 투척! 아마 우이독경처럼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겠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바닥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한 곳에 정리한 어머니 솜씨

정리가 안 되는 이들의 특징은 수납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준 원피스를 잘라 커튼으로 만든 동생. 그녀만의 감각은 인정하나, 도통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로 방이 점점 좁아지는 것은 보기 안 좋다.

어머니는 빨래를 한 후,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통에 담고 공간을 확보한다. 어머니의 땀이 들어간 흔적이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찍고 보니 뭔가 어두우면서도 느낌 있어 마음에 든다.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웃으신다.

동생은 정리보다 자잘한 물건을 사서 못을 박고 선반을 만들고 무언가를 걸고... 사부작댄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늘어나는 물건들로 다시 어지러워진다.

오늘 어머니 손길 든 공간도 며칠 못 가 원상 복구되겠지만. 우선 며칠만이라도 유지하라고 가족 단톡방에 다시 한번 못 박아 이야기했다.


인생의 전투 같은 순간.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전우인 어머니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시기를 진심으로 빌게 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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