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니까 마음껏!
밥솥에 밥이 어중간하게 남으면 찬밥이 된다. 한 공기 정도가 딱 남는다. 동생과 조카들은 집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애매하게 남은 밥은 죽 재료로 쓰인다. 오늘 어머니는 '딸기 계란죽'을 만드셨다.
알람이 울리기 전, 미리 깨어나 폰을 할 때도 있지만. 느릿한 나와 달리 어머니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깨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한 그릇이라도 먹이고 보내려는 어머니의 정성은 몇 십 년간 이어졌다. 특별히 오늘은 비주얼에 신경 쓴 눈치. 계란죽에 김을 잘게 찢어 고명으로 얹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딸기가 보너스처럼 앉았다.
"자, 봐라!"
이제는 어머니가 먼저 사진 찍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일요일에도 출근한 동생을 빼고 맏이와 조카 두 명의 몫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 그런데 맛은 오묘하다. 딸기랑 계란을 같이 먹으면 새콤하면서도 달고 묵직함이 올라온다. 그래서 뭉근한 계란죽을 먼저 떠먹고 나서 입가심 삼아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편이 더 낫다. 적어도 내 입맛에는.
이런 어머니의 정성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조카들은 교회 가기 전, 입도 안 됐다. 학교 가는 날도 아닌데, 일찍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하기도 빠듯한 모양이다. 티라미수 같이 검은 김 위로 깨가 뿌려져 있고, 앙증맞은 딸기가 놓인 계란죽. 예쁘다!
"끝자락이라 단 맛은 적어도 싸니까."
한 접시(?)에 5천 원이라 우리 집과 동생네, 각각 먹으려고 하나씩 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끝자락 딸기'가 되었다.
서민들은 물가에 민감하다. 특히 나 같은 뚜벅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한 달 버스비도 만만치 않다. 또한 먹거리는 줄이기도 힘드니까 반찬을 만들 채소나 과일값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금양체질에 맞는 끝자락 딸기를 올해 많이 먹었다. 싸니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지만 싸니까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어 고마운 일.
딸기가 연상되는 공중전화 부스.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고 버스 정류장에 오니 눈길을 끈다. 예전에는 친구에게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기도 했다. 동전을 들고 다니면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니까 용건만 간단히 하고 떨어지는 숫자를 보면서 급하게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언젠가 공중전화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눈에 들어온 김에 찍었다. 인간 관계도 시작 단계가 있고 끝자락이 있다. 누군가 다가올 때, 나와 친해지기 위해 친절을 베풀 때 얼마나 신선한가. 그러나 서로 친해지고 무뎌지면 작은 일에도 섭섭해진다. 어느새 신선함은 사라지고 맹숭맹숭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게 없다.
겨울, 추위에 손이 얼어가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친구와 오랫동안 수다를 떨던 생각이 나서 아련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곁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어떠한지. 끝자락 딸기라서 우리 집에 왔지만, 딸기는 딸기다. 빨간색으로 존재를 강렬히 인식시킨 채, 비타민을 충전해 준 친구! 누군가, 우리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섭섭해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살펴보자. 싸다고 딸기가 아닌 것은 아닌데, 딸기를 사과로 대한 것은 아닌지.
어느 때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기도 버거워서 그냥 모르겠다, 방관하기 쉽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우선은 남에게 문제를 찾기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다. 휴식이 필요하다면 잠시 멈추어도 좋으리라. 노력이 필요하다면 자존심을 챙기기보다 상대에게 친절을 베풀고 먼저 틈을 주면 상대도 미안해하면서 다시 좋아질 수 있다.
너무 고귀해서 어려운 사람보다 끝자락 딸기처럼 누구나 쉽게 다가오고, 작은 목소리일지언정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 그리 어렵게 살고 싶지 않다. 싸니까 마음껏 먹은 빨간 딸기처럼. 쉽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