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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하라, 서로가 서로를.

각자의 위안으로

by 윤작가
동생이 심은 채송화(?) 하나가 진홍빛으로 물든 얼굴로 방긋!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서다 얼굴을 내민 꽃 한 송이를 찍었다. 동생은 한 종류가 아닌 여러 개의 꽃모종을 여기저기, 부지런하게도 옮겨 심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달짝한 냄새가 난다.

"아까워서 씨 빼고 달이는 중이다."

지난해에 담은 매실청을 아직도 그대로 두다가 큰 결심을 한 어머니가 과육을 건져 활용 중이다. 이 행위는 어머니의 위안이다. 맏이가 책을 사는 것처럼. 둘째 딸이 꽃모종을 사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요리가 일상에서 창조를 일으키는 마법이다.


작은 화분에서 큰 화분으로 옮겨 심은 후,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를 만들어준 어머니.

징그러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진딧물을 손으로 문지르며 잡아준 고추 모종은 현재 우리 집 막내. 방금 생각난 이름인데, 식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애정'이라고 해야겠다.

"애정아~" 하고 부르면 대답할 것 같다. 가장 위에 난 작은 잎에 진딧물이 잘 생긴다. 진딧물이라는 글자만 적어도 양팔에 소름이 끼치는데... 그런 이가 애정이를 위해 날마다 살펴보는 지경이다. 어머니는 큰 화분으로 자리를 바꿔주고 나서 안심이 되는 눈치. 이 또한 그녀의 위안이리라.


어제는 부추와 당근을 넣은 전을 만들어 동생에게 전한 후, 한 마디 하셨다.

"너는 당근 빼고 부침가루 살짝만 부어 만들어줄게."

금양체질이라 뿌리채소를 먹지 않는 큰 딸을 배려해서 한 접시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는 좋지 않지만, 그 마음과 정성을 만끽하며 맛있게 먹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아 찍고 스스로 만족!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앞에서 말한, 산딸기를 조금 넣고 매실청에서 과육을 건져내어 씨를 빼고 오래 달인 산딸기매실잼 완성. 모난 딸은 본인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야무지게도 안 먹는다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니까 이런 까다로운 딸을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이런 어머니가 계시니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 결코,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부디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온몸에 매실잼 냄새 가득 묻히고 양은 냄비 하나 멋들어지게 바닥 좀 눌어붙게 만든 희생이 스며든. 산딸기매실잼을 다른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기를!


검은 탁자 위 검붉은 잼이라서 그녀의 조언대로 손수건을 깔았다.

"위안은 위안을 받는 대상 자체에 있다기보다 그것을 갈망하는 내게 있기 때문이다."

- 이덕화,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 중에서


"오늘 빵집 문 여니?

잼이 있으니 잼을 바를 식빵을 사야 된다는 어머니. 이 핑계로 쇼핑할 거리가 생겼다.

오늘 나의 위안은 집게핀이었다. 작년 가을에 사서 편하게 쓰던 집게핀을 얼마 전, 손에 힘을 많이 주느라 고정시키는 부분이 부서졌다. 인터넷을 뒤지니 마음에 드는 새로운 색상은 품절인 듯. 예전에 쓰던 것과 똑같은 제품을 다시 주문. 이러니까 돈이 새는 것이다. 이번에는 조심해서 오래 쓰면 되니까, 남는 장사로 만들어봐야겠다.


김밥꽃과 후식용 과일(오늘 아침 메뉴)

비슷한 기질이라 아침을 꼬박꼬박 차리는 엄마와 그 아침을 빠짐없이 먹는 딸. 우린 아침 콤비이다. 이토록 일상에서 그녀가 차린 음식을 찍는 이유는 먼 훗날(이길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음식을 차린 이가 세상에 없을 때 우리를 위해 수고한 당신의 정성과 사랑을 대대로 기억하기 위함이다.

오후에 지인과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빵집에 가기 위해서이다. 아예 빵을 먹을 수 없다고 체념한 나이지만, '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기만 해도 반가워서 찐빵과 쌀식빵을 사서 하나씩 맛본다. 체질에 안 맞는 매실잼을 한 숟가락 얹어서.


유혹에 참으로 약한 것이 인간, 아니 저입니다!

나만의 위안으로 행복을 우물거린다.

2월 말, 한의원에서 8 체질 검사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인스턴트를 끊다시피 해서 현재 몸무게는 5kg이 빠졌다. 중간에 피드백 삼아 초음파 검진으로 경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지난달 검진을 놓쳤다.

그동안 참아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랄까? 종종 일탈 중이다. 지금이 그런 셈. 달걀보다 조금 더 큰 찐빵 하나와 쌀식빵에 어머니가 만든 산딸기매실 잼을 한 숟가락 펴 발라 맛보니 꿀맛이다. 하하!

각자의 위안으로 일상을 함께 하는 존재.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데는 꼭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매거진처럼 미래에 대비해서 그녀가 만들고 차린 음식을 찍고 글 쓰는 나 같은 사람처럼. 사랑하는 이를 마음에 담고 자신만의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남은 하루, 서로 잘 보내기. 오늘의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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