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너 그 꽃들이 정말로 너 때문에 피고 졌다고 생각하는 거야?"
(* 그럼 아냐? 최소한 그동안 들인 공은 인정받아야 하잖아)
"사랑이 널 기쁘게 한다면 그건 네가 무엇을 주어서도, 무엇을 돌려받아서도 아니야."
(* 그래? 그렇단 말이지? 사랑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겠군...)
- 다비드 칼리 글, <<사랑의 모양>> (괄호 속 * 부분은 내가 답한 부분, 큰 따옴표 속 대화는 원작 인용)
어제 웬일로 동생이 장 보러 가자고 하길래, 오늘 어머니와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트에 다녀왔다. 재래시장은 현금을 써야 하고, 여기는 오일장이 있다. 어머니와 동생은 가끔 오일장에 가서 반찬이나 간식을 산다. 그러나 주차할 때가 적고 일하는 시간과 겹쳐 자주 가지는 못한다. 보통 어머니와 내가 주말에 버스를 타고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사서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정류장까지 이동. 운동 삼아 낑낑거리며 다녀오는 편이다. 오늘은 동생 덕분에 편하게 장을 봤다.
어묵을 사야 하는 어머니는 어묵은 깜빡하고 집에 있는 간장을 또 샀다. 마트에는 세일이나 1+1 찬스가 있기 때문에 커다란 간장 옆에 붙은 서비스 제품에 혹한 탓일 거다. 작은 쌈장 두 개, 해산물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국내산 오징어 세 마리를 전복 대신 샀다. 이미 손질해 놓은 원양산 오징어와 천 원 정도 차이 나서 그냥 국내산을 사서 사장님께 손질해 달라고 했다. 화장지는 3만 원이 넘어서, 동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겠다고 했다.
조카들을 위한 라면과 과일도 샀다. 조카들은 오렌지, 금양체질인 나는 비싼 미국산 체리를 과감하게 질렀다. 자주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날 잡은 김에 평소 못 먹는 식품을 보상 삼아 샀다. 어머니는 통영 잔멸치를 사서 멸치 볶음 반찬을 금세 만들었다.
"사진만 찍을 게 아니라 만드는 걸 보고 배워서 직접 해야 할 텐데..."
하시는 어머니에게 "저도 닥치면 다 해요." 했다.
"그래, 어깨너머로 본 게 있으니 할 수 있을 거다."
어머니의 말에 용기 상승.
"그럼요, 지금은 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하는 거죠."
제 할 말은 다 있다.
중간에 간식을 잘 먹지 않는 딸에게 오징어 데친 거 하나를 먹어보라고 은근슬쩍 유혹하는 어머니다.
데친 오징어 하나 먹다 보면 다시 밥상 차리듯 멸치볶음도 먹어보란다. 이것저것 집어 먹다 보면 배가 더부룩해진다. 그러면 기분이 그리 좋은 상태가 못 되니 맛만 보고 얼른 젓가락을 놓았다.
어머니는 지인이 보내준 코나 커피 가루 들어간 쿠키까지 뜯어 "하나 먹어볼래?" 대놓고 들이민다. 설탕과 카페인 든 커피 성분 있는 쿠키를 먹으면 안 되는 딸은, 더구나 우유까지 들어간 쿠키를 간 크게 한 개도 아닌 두 개나 먹었다. 오늘도 일탈이다.
2주 뒤 산부인과 초음파 검진이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척 긴장되고 떨린다. 부디 좋은 결과이기를.
금양체질에 맞는 체리를 먹으며 앞서 먹은, 체질에 맞지 않은 성분들이 상쇄되기를 바란다.
마트 다녀와서 거의 조리가 다 된 메밀냉면을 보니 어우러짐이 갖는 분위기가 우리 가족의 사랑 같아 사진을 찍었다.
메밀면만 간단히 삶아 이미 조리된 육수를 부으면 된다. 마트에서 조리법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더니, 직원이 와서 육수는 봉지 안에 들어있으니 면 삶으면서 냉동실에 넣고 살얼음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며 구매를 부추긴다.
"이거 육수 있는 거 맞아?"
"여기 설명서 보면..."
"육수를 따로 부으라고?"
"안에 있으니까 붓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이런 식이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 해석하는 것도, 반응도 다르다. 혈육인데도 기질이 다르다. 그래서 가끔 싸우기도 하고 푸는 방식도 다르다. 어머니는 딸들을 위한 점심으로 메밀냉면을 해주려고 했는데, 동생은 집에 오자마자 약속 있다고 다시 외출했다. 이렇게 다르다.
고명으로 올린 오이, 당근, 양파인 줄 알았던 얼음, 체리까지. 갖가지 재료가 합쳐 하나의 작품이 된다. 먹거리가 완성된다. 가족도 이런 게 아닐까?
그동안 동생이 힘들 때 언니로서 나선 부분이 있었기에 때로 동생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했다. 먼저 결정하고 통보하고 따라오라고 했다. 사랑의 모양이 정해져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때문에 꽃이 피고 진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느 그림책, 위에 나온 구절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체리를 냉면 고명으로 얹는 사람은 세상에서 우리 어머니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고명만 봤으니까. 거기에서 사랑을 느끼는 나. 단지 예뻐서가 아니라 딸의 건강을 위해 올린 고명이기 때문이다. 음식도, 사람도 어우러짐이 갖는 분위기가 있다. 사랑이 내는 모양이 다양하다. 앞으로도 티격태격,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모든 관계들. 마트 다녀와서 너무 거창한 생각에 이르렀나 싶은데, 이렇게 글 한 편 썼으니 오늘은 성공! 착각이어도 그리 생각하며 속 편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