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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 않아도 무용하지 않다고

닮아가는 우리

by 윤작가

얼마 전 독립출판물과 중남미 관련 서적을 파는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그림만으로 된 독립출판물 따라 부록이 쫓아왔다. 오래전, 홍대 앞 상상마당갤러리에서 열렸던 독립출판물 기획 전시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일 년 뒤, 자신의 출판사에서 발행했다는 이가 실수로 그림이 잘못 들어간 초판본이 죄송해서 편지지까지 동봉했다는 스토리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편지지가 생겼군, 생각하다 또 따라온 다른 부록이 크게 외친다.

"별로인 나를 견뎌야 해요."

와우! 인스타 피드에서 종종 보았던 에세이툰 작가인 '쑥'님의 표현이다. 처음에는 여기에 인용할 생각이 없었는데 문장을 보자마자 인용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지금 내 심정이니까.


시간이 좀 지났는데, 어머니 밥상이니 인증을~^^

우리가 어릴 때는 진 자리, 마른자리 할 것 없이 기저귀 갈고 빨고(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하얀 천 기저귀를 쓰셨기에) 안색을 살피고,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가 지금은 딸들과 손자와 손녀를 위해 반찬 만들고 밥상 차리고 있다. 죄송하다. 어머니도 평생 하던 일이니 얼마나 이골이 났겠는가.

때 되면 알아서 밥 챙겨 먹는 식구들이 아니기에, 때맞춰 밥을 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찾을 때 있어야 하니까 넉넉하게 해 두는데, 다들 밖에서 먹고 들어오면 처치곤란. 그럼 어머니는 남은 밥에 계란을 넣어 죽을 만들거나 밥을 덜어내어 김에 싸거나 내게 먹으라고 하신다.


동생네 청소하고 보상으로 내가 내게 차려준 늦은 점심

집밥에 나도 어느 정도 이골이 나서 때맞춰 새로 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계란찜을 하거나 평소 안 먹는 메뉴가 떠오를 때.

어머니와 동생은 출근, 조카들은 학교, 나는 청소를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빨래를 통에 담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았다. 음악을 틀었지만, 머리카락과 먼지가 뒤섞인 곳에는 욕이 나오려던 순간을 참고, 무념무상으로 닦고 닦았는데...

사우나 간 것처럼 더운 기운이 후끈. 땀이 나려 한다. 평소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인데 청소가 몸에 밴 건지 기분이 슬슬 좋아진다. 이게 노동의 기쁨이구나, 놀라웠다.


가만히 있을 때는 더부룩한 속이 청소를 하고 났더니 몸이 가뿐. 기분도 상쾌. 여기저기 놓인 페트병 속에 든 물은 화분에 붓고 한 곳에 모아둔다. 환기 삼아 활짝 연 창문으로 공기가 통한다. 쾌쾌한 냄새가 빠지고 뭔가 정화되는 느낌. 할 만 한데?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러나 자주는 못하겠다.


어머니 따라 체리를 고명으로 올린 메밀면

지난 주말에 마트 가서 산, 메밀면을 삶았다. 메밀은 몸에 맞으니까. 그런데 잊은 게 있다. 면은 기본으로 밀가루가 들어간다. 메밀 함량이 5%인데, 나머지는 뭐란 말인가. 이렇게 허당이다. 소스 성분에는 뿌리채소인 무가 포함되어 있다. 냉수 대신 포도당 탄 물을 넣었다. 이러면 덜 해롭겠지 위안 삼아서.

아침에 어머니가 싼 김밥과 두부조림, 큰 마음먹고 산 접시에 반찬을 덜어 플레이팅까지 하며 스스로에게 늦은 점심을 차려줬다.



유명하지 않지만, 무용하지 않은 작가로 살기 위해서. 글로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때로 낙심한 나머지, 자체 출판사를 차려 펀딩으로 책을 냈다는 누군가처럼 그래야 할까 수없이 고민하면서. 브런치 구독 멤버십만 덜컥 신청해 놓고 아무 대책도 없이 걱정만 커지는 나라서. 아무튼 해야 할 것은 있는데 왜 해야 할 일보다 다른 것만 하며 뱅뱅 도는지.


"별로인 나를 견뎌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이 글을 쓴다. 사진을 찍고 일상을 sns에 올리고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사며 누군가가 도달한 지점에 언젠가 도달하길 바라며. 브런치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지 않았냐, 이 점만으로 없는 용기 이끌어내며 살고 있는 윤작가. 책 한 권 팔려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러나 한 권의 인세로 근로장려금도 못 받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렇게 살아간다. 아무튼 시리즈처럼 <아무튼, 윤작가> 버전이 이 매거진 콘셉트나 마찬가지다.


"그래요, 별로인 나라도 끝까지 견뎌볼게요.

어차피 아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으니까요."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 고민이 된다면, "아무튼, 이게 나야!" 이런 배짱으로 견뎌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하는 오후, 벌써 5시가 넘었다. 시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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