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우울을 벗어나는 길은...
흐린 날, 우울을 벗어나는 길은 글쓰기이다. 속이 답답할 때나 서글퍼지려 하면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오늘은 어머니를 변호한 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슨 송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가까운 벗이 어머니가 단 것을 너무 자주 먹는 것 같아 당뇨가 우려된다는 연락을 해왔다. 우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금양 체질답게 할 말 다 했다.
찾아본 바로 금양 체질은 원석에 가까워서 꾸밈없고 도끼처럼 뒤돌아보지 않는 성향에 가깝다고. 그 말은 아니다 싶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는 거다. 상사나 학부모님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마음에 꽉 막힌 말은 반드시 꺼낸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아직 그 정도 내공밖에 안 되는 이라 어쩔 수 없다. 부족해도 이게 나니까.
"생전 아버지로 한평생 억눌려 사셔서 그래요. 여자들(남녀 차별이라 하기 전 우리나라 가부장적 구조를 살펴봐주시길, 양해 부탁드립니다)은 특히 당이 많이 필요해요.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리며)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조언이 잔소리처럼 들릴 거예요. 그냥 두세요. 자유가 필요해서 그래요."
말하고 나서 속으로 놀랐다. (나보다) 어른에게 이렇게 따박따박 받아치듯 말하는 작자가 작가라니. 이를 어쩌나? 속으로 무례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어머니를 향한 딸의 극진한 애정을 눌러 담은 진실이기도 하다.
"화를 내서 자기를 지켜야 할 때 울음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진짜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는 것이 두려워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 김병수, <<감정은 언제나 옳다>> 중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처럼 노름 밑천 떨어지면 고함을 지르고, 기분 따라 움직이던 생전 아버지로 어머니와 나는 숨죽이고 살았다. 아직도 가끔 심장이 아프다. 그의 발소리에도 숨죽이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니 결혼에 대한 로망과 환상은 물론이고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노년의 여인처럼 간접 경험 한 덕분에 부부의 애증과 결혼에 대한 현실과 환멸, 빛과 그림자를 이토록 잘 아니 결혼을 갈망하며 연애 세포 살려 데이트 전선에 나서겠는가. 아서라, 혼자가 편하다, 이러며 숨만 쉬고 있을 게 아닌가.
아무튼 그런 나라서, 생각지도 못한 삼대와 함께 살며 말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여성들의 애환을 몸으로 부딪쳐 알아낸 느낌이랄까.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보기도 했거니와 직관이 뛰어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부분도 많다.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그동안 충분히 애썼다고.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었냐고. 동지 같은 심정으로, 총알 날아다니는 전쟁터 전우로 곁에 있는 딸이기에. 그 누구든 어머니에 대해 한 소리 나오기만 해도 경계하고 엄호에 들어간다.
글쓰기는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다. 특히 나 같은 에세이스트들은 더할 수도 있다. 위험 요소도 같이 상승한다. 그럼에도 삶을 나누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치유의 일환이니까. 남성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좋아하는 책과 그림이 있어 덜 외로웠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능력도 한몫한다. 2025 서울 국제 도서전에 못 가는 대신, 방구석 독자로 독립서적을 뒤적거리며 무명의 작가가 누군가에게 따스한 눈길 보내며 같이 빛 좀 보자고 무언의 격려와 응원, 바람과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간다.
"캐비어 사주세요."
방과 후 곧장 학원 오는 아이에게 간식으로 뭐 사줄까 물으면, 늘 저런 식이다. 자신만의 장난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겠지.
"너한테 캐비어 사주려면 샘이 한강처럼 노벨문학상 타야 한다."
하니, 그럼 타면 되지 않냐고 한다. 몰라서 쉬운 건가.
"노벨문학상을 아무나 타는 게 아냐."
아이의 대답이 나의 제자답다.
"샘도 한강처럼 소설 써서 상 받으면 돼요."
(내가 가르치는 아이 맞네, 보람은 있다?)
속으로 웃음이 터진다. 이래서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십 대들 가르치며 행복해하는 나다.
가다 보면, 여기는 그만!
가로막힐 때도 있을 테지.
그래도 노란 줄에 이은 하얀 줄
여기는 임시로 차 댈 수 있어,
싶은데 그러데이션처럼 나타나는 하늘빛, 파란빛
통들이 온몸으로 시위(?) 중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여긴 오지 말란 소리지?
네 공간이란 말이지?
존중할게.
우리 마음에도 잠시 홀로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할 테니까.
벌써 여름이다. 전국은 장마권으로 들어서고, 습도 높은 날 불쾌지수도 올라갈 찰나, 수시로 환기가 필요하다.
최근 스레드에 가입해서 브런치 작가님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모두 글쓰기에 진심이란 거다.
출간 유무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느라 치열하다.
오늘 구독한 어느 '스친'이 출간도 한 이가 왜 그리 내적 고민이 많냐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렇게 비칠 수 있구나, 아차 싶었다. 너무 우울 모드였나? mbti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많고 울컥 잘하는 infp 감성 과라 적는 글 속에 기류를 짚어낸 것 같다. 그런 관심조차 반갑고 고마운 오전을 보내고 점심도 미룬 채 쓰는 중.
누가 보든 안 보든 주차 방지 고깔들은 주인의 손길 입고 제 자리에서 열일한다. 우리 인생도 누가 주목하든 안 하든 갈 길 가야 한다. 홀로 가는 인생이지만,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마음으로 변호해 주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마치 딸이 어머니의 인생을 변호하듯이. 감사한 하루가 또 왔다. 일일이 찾아가서 다 읽지도 못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좋아요 꾹 눌러주신 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감사를 전해요. 이 여름 다 같이 안녕하기를! 오늘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