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도 "행복한_나"이기에
동생의 선물
오늘은 오일장이라 동생이 조카들을 등교시킨 후, 장에 가서 여러 가지를 사 왔다. 언니가 자궁근종으로 산부인과 초음파 정기 검진을 하고, 한의원에서 8 체질 검사 후 금양체질에 맞는 음식만 먹는 것을 아는 동생이 자두와 체리를 사 왔다. 동생의 선물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언니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동생의 애정이다. 안다. 그래서 자두 봉지를 열었을 때 훅! 끼치는 향기에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자두는 돌아가신 이모가 췌장암 말기 때, 먹고 싶어 했던 과일이기도 해서 더 특별하다. 그때 이후, 자두는 이모를 생각나게 하는 과일이니까.
"동생의 선물이다."
어머니는 자두를 씻어 배달음식, 하얀 용기에 담으며 이야기한다. 가만히 보니 동그라 놈, 하트처럼 생긴 놈, 살구빛부터 자주와 빨강이 섞인 오묘한 색상에 표현 못하겠다. 창조주의 솜씨는 감히 표현해 내기가 이토록 어렵다.
#행복_한나 #행복한_나
십 대 시절에는 짧고 굵게, 강렬한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길고 가늘어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지인이 자신의 삶을 두고 아이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을 망설일까 걱정스럽다는 글을 썼다. 그 글에 엄마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답글을 남겼다. 모험심과 용기가 적어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랬더니 "행복_한나 #행복한_나"라고 언어유희를 써서 뭉클한 답글을 달아준다. 기분이 좋아 카톡 상메와 페북 프로필에도 이 문구를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여기에도 옮긴다. 좋으면 비눗방울처럼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사람이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만끽한다. 말 그대로 "행복_한나 행복한_나"가 맞다.
학원생은 몇 안 되어 월급은 말할 수 없이 미천하고, 대표님께도 죄송스럽다. 어머니께는 더 송구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 굶고 거리에 나앉지 않은 이유는 가족과 벗들의 격려와 사랑 덕분이었다. 가장 의지하고 사랑하는 신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유형 대가족
어머니, 동생, 조카들. 우리 가족은 지인의 말대로 신유형 대가족이다. 다문화가 아니라 다세대인데, 신유형이다. 조카들은 올해 생일, 이모에게 가장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 그동안 힘겨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끈끈한 동지애가 생겼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총대 메고 앞에서 욕하고 싸우고 총알을 피하는 대신 온몸으로 방탄하듯 막아서는 사랑을. 동생과 심하게 싸워 집 나간다, 못 살겠다 등 못할 말도 서슴없이 한 사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 서로를 걱정하고 위한다는 것을. 소망이 있다면 죽기 전 우리 집안에 빚을 1원도 없도록 만드는 것. 조카들 홀로서기 온전히 할 때까지 지지하고 도와줄 수 있을 것. 말이 이렇지 가족 곁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나이기에 이런 글도 쓴다. 돈은 크게 못 벌어도, 투닥거리는 동생과 사춘기 접어들어 이모 말 귓등으로 듣는 조카들로 마음 고생하기도 하지만. 귀염둥이 '우리 사람'들이 주는 공동육아의 빛과 그림자를 고루 맛볼 수 있다는 것. 갱년기는 벌써 지나간 어머니가 아직도 얼굴에 열꽃이 피는지 피곤함이 화로 표출되는 건지 곱던 얼굴에 무언가 나고 피부과에 가서 약을 타오지만, 곁에 계시기에 무한감동이라는 것.
"너희 메밀소바 해줘야겠다."
피부과 다녀오는 길, 농협마트에 들러 장을 봐온 어머니는 아직도 우리가 십 대인 줄 아는지 늘 밥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제 손으로 준비해서 한 끼 먹여야 세상이 돌아가는 줄 아는 사람이다.
생긴 대로 살게요!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소소한 행복 누리며 사는 법에 진지한 관심과 고민 많은 작가로서, 이 모든 순간에 감사한다. 우선 지금 감사하다. 눈 떠서 노트북 켜고 글 쓰는 지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다. 기질 따라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 다르다. 누군가는 밖으로 나가 에너지를 뿜어야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나 같은 내향인은 책 읽고 글 쓰고 생각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해야 잘 사는 인생이 아니다. 각자 생긴 대로, 꼼지락거리듯 살아도 괜찮다. 아무렴 어때? 사랑의 마음 안고 살아가면 그게 가장 큰 성공이다. 스스로를 지옥에 몰아넣지 말자. 어느 뇌과학자가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곧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강연하던데. 그의 말대로 때로는 남 생각하며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면 뇌도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을까?
일어났으면 하는 일을 마음속에 새긴다. 호흡한다. 그리고 즐긴다.
내가 가진 보물을 가슴에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손턴 와일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