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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그녀처럼

디테일로 표현하는 사랑

by 윤작가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우리 어머니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하트 뿅뿅 엄마 밥상의 근원이자 태산 같은 존재. 어릴 적부터 워낙 엄마바라기여서(이 말은 생전 아버지가 바랄 만한 인간이 아니었단 이야기) 그녀가 천국에 가는 날은 하늘이 무너지는 날이 될 거란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도 어머니는 디테일로 사랑을 표현한다.


새우 눈이 선명하여 보기에는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자르는 것은..."

(그런 것까지 설명하면서 잘라야 해요?)


"먹기 좋으라는 뜻이다."

(왜지???)


"앞뒤 잘라내면 먹기가 수월하거든."

(이때까지도 무슨 뜻인지 체감하지 못한 나)


아마 어머니는 이런 사람 없지, 하는 심정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 해물 킬러인 맏이는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지 못하기에 그녀는 선물 들어온 새우를 간장에 조려 머리 자르고, 몸통도 먹기 좋게 몇 부분으로 나누어 통에 담는다. 좀 잔인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건 공포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그냥 먹거리를 소분한다는 뜻이니까.



먹다 보니 알겠다. 지저분해 보이기에 달걀로 최소한의 방어막 장착!

하루 종일 새우 반찬을 먹었다. 먹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통으로 찌거나 조리면 일일이 발라 먹어야 한다. 손에 양념 냄새가 배고 먹는 과정이 더 수고스럽다. 어머니가 먹기 좋게 잘라놓은 디테일로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먹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놀랐다. 글로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손대지 않고 이로 먹기에, 잘게 나누어져 있으니 살만 발라먹기가 편했다. 이래서 어머니가 일일이 가위로 자르셨구나.

사랑은 때로 디테일이 있어야 완성되는 게 아닐까? 섬세한 이들의 장점은 예민해 보여도 남들이 쉽게, 아니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까지 신경 쓴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무딘 유형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때로 과잉 보호하듯, 입에 들어가는 것에 신경 쓰셨다. 입이 짧아 밥 한 그릇은 무조건 많다고, 덜어달라는 딸의 요청에 조금이라도, 어떻게든 한 입 더 먹이는 것이 임무가 된 것처럼. 그러다 보니 그녀의 동작은 환경이 만들어낸 디테일인지도 모르겠다.


새까만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무늬와 색감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다 보니 나무가 아파 보여 애잔하기도...

"기억하겠니?

바다는 아무리 휑궈도 바다라는 것

내가 너를 계속 사랑할 거라는 것


그때 네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한 건 말이야

이미 내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 고선경, <그때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한 것> 중에서


때로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도 모르고 그냥 사랑할 뿐이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곁에서 커 왔을 뿐. 때로 어머니처럼 살기 싫었고, 그렇게 가다가는 망할 것 같았다. 동생의 결혼식과 첫째 조카의 돌잔치 후 무너져버린 어머니 치아를 보며 얼마 후 치과 가서 몇백 만 원, 카드 할부 끊으며 충치 치료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없는 형편에 비싼 돈 들여 치과 다녀왔다고 어머니는 엄한 표정으로 나무랐지만, 확실히 알았다. 그때가 아니면 언젠가 어머니처럼 몇백이 아닌 몇천 단위로 바뀔지 모른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딸보다 훨씬 디테일하게 가족을 돌보고 헤아렸다.


"새우 까라."

조카 입에 들어갈 새우를 까라고 명령하셔야만 움직이는 나와 달리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잘 먹을까 생각하고 궁리하고 연구하듯 베푸는 그대여, 사랑한다면 당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용기가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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