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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 친 사랑

"감자 합니다!"(오늘은 감자와 겉절이 특집)

by 윤작가
어젯밤 어머니표 감자볶음밥

그녀는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아침을 소리로 깨운다.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휘젓고 자르고 다듬고 무치고 볶고 부엌에서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서 그렇다는데, 글쎄 아직 완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딸 입장에서는 그냥 미(美) 친 사랑 그 자체니까.

"이제 그만 좀 하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이제 몇 년 안 남았다며, 쉴 생각이 없으시다. 이 글을 쓰는 창밖으로 "방충망 합니다, 방충망!" 자동 방충망 설치한다는 방송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사라졌다 다시 다가온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스피커처럼 어머니의 팔과 손도 쉴 틈이 없다. 식구들 입에 들어갈 먹거리 만드느라, 짜증 내면서도 혼자 분주하다. 나도 포기했다. 힘들어 보여 말려도 안 되는 것을. 어머니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게 어머니를 존중하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포슬포슬 냄비 태우며 쪄낸 감자가 먹음직스럽다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고 오니, 어머니는 이미 감자를 쪄서 바구니에 담아뒀다. 이 바구니는 외할머니 유품이다. 외할머니가 쓰던 물품을 물려받아 엄마를 기억하는 어머니. 정스럽다.

페친 중 한 명이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대서 그곳을 통해 수미 감자 10kg를 샀다. 주말 비가 내려 수확에 더 공들이고 햇빛에 말리는 수고를 더했다고. 껍질이 얇고 부드럽다. 대놓고 달지 않지만, 은근하게 감도는 맛이 일품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샀다. 사실 금양체질이라 감자가 맞지 않지만, 뿌리채소 중에서 그나마 가끔 먹을 수 있는 게 재료라서 맛봤다. 역시 맛있다. 외할머니 바구니에 어머니가 삶은 감자. 이 세상, 그 어떤 간식보다 찐 간식. "감자 합니다!"


메밀라면 한 끼에 나트륨 지수 폭탄이라는 기사에 움찔. 우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어머니가 말아주신 가쓰오 국물 메밀소바를 점심으로 먹고 그녀가 담그는 겉절이를 구경했다. 모처럼 배워볼까, 큰 결심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가... 역시 안 되겠다. 보기만 해도 힘들다. 집안일은 체질에 안 맞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구는 체질에 맞아하나, 누군가 해야 하니까 하지."라고 이야기할 것도 알지만. 역시 안 맞다.

딸을 잘 아는 어머니는 기대도 안 하신다. 어깨너머로 보는 일도 만만치 않구나. 어머니에게 패션 센스와 요리, 유연성을 물려받지 못한 나는 이렇게 사진 곁들인 글이나 쓴다.



쓱싹쓱싹 겉절이, 배추를 사선으로 칼질해서 자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동영상은 릴스로 만들었다.

"말 안 들으면 쓱싹쓱싹 혼나는 거예요?"

어머니는 이파리 부분이 포함되어야 맛있다며 이렇게 잘라야 한단다. 도마에 칼 대고 자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맛이 없단다.

재밌을 것 같아 몇 번 해보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둔하고 느려 탈락!

자른 배추가 어느 정도 통에 담기면 소금을 뿌린다. 또 자른 배추를 올리고 소금을 뿌린다. 속도를 높이려면 소금을 많이 뿌려야 하고 조금 늦추고자 하면 조금만 뿌려도 된다고. 많이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겠지.


핵심은 양념장일 텐데 글 쓸 거라고 소금에 절이는 과정까지만 목격. 소리만 들린다.

김치의 핵심인 양념은 목격하지 못하고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쓴다. 이 매거진은 요리책이 아니니까. 어머니의 밥상과 요리,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찾아가는 글이니까.

이러는 찰나, "김치 담그는 거 본다더니 안 보니?"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정구지(부추의 경상 방언)가 없어 안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에 절이는 시간이 짧아 젓국과 소금을 더 추가해서 버무리는 사진도 찍었다. 벌써 피곤...

한국인의 밥상은 진짜 만만치 않다. Crazy라는 영단어가 떠오를 정도이다.


겉절이 과정

"양념은 어머니께 직접 물어보라고 해야겠어요."

"어느 어머니? 자신의 엄마에게 물어보라고?"


어머니는 자신이 요리하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고, 잔심부름하며 선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딸은 그렇지 못하다. 보면 볼수록 기운이 소진되고 피로도가 올라간다. 다른 성향은 거의 비슷한데, 요리는 왜 어머니를 안 닮았을까?

동생도 마찬가지. 우리 집에서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는 어머니밖에 없다. 첫째 조카가 할미를 닮았는지 요리를 즐기는 눈치. 대신 설거지는 이모 몫. 아무튼 반찬 한 가지 만들다 한 시간 뚝딱 다 가는 한국 음식. 이래서 먹는 이들은 직접 해봐야 안다. 체험해야 이해한다.


직접 요리하지는 못할 망정 입으로 어머니 기운 북돋아야 하는데, 그녀 요구대로 이거 찍어라 듣다 벌써 피곤. 이래서 내리사랑이다. 해주는 것도 못 받아먹니? 어이구, 딸들은 언제 철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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