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노래도 속은 부드럽지."
"어머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럴 때 아니면 제가 언제 어머니를 씻겨 드리겠어요?
이렇게 어머니 씻겨드리는 건 영광입니다."
어제저녁, 어머니의 목욕을 도와드리며 건넨 말이다. 지난주 차량 트렁크에 오른쪽 손가락을 찧어 붕대 감고 치료 중인 어머니. 자신의 분신인 딸에게조차 신세 지는 것을 미안해하신다.
"네가 엄마 때문에 고생이다."라고 하시길래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이것도 오이예요?"
"그래, 이게 노각이다."
지금까지 노각은 노각이고, 오이는 오이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노각은 나이 많은 오이. 어머니는 겉은 노래도 속은 부드럽다 하신다. 그렇구나. 나이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모는 노쇠해도 내면은 부드러워지는 것.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해져 포용력이 커지는 것. 그렇게 세월을 입는 게 진정한 나이 듦이 아닐까 싶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이웃이 건넨 노각으로 밑반찬을 만드셨다. 소금 뿌린 후 고춧가루와 참깨 더하면 금세 노각 무침 완성이다. 초록색 바가지에 연둣빛 노각이 청량해서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가 다친 손가락은 아직 손톱이 길어 나오지 않는다고. 얼마나 골병이 든 건지 자연스레 손톱이 길어 나와야 새 손톱이 덮이고 차도가 있을 텐데... 슬며시 걱정되어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어머니 신경이 죽지 않고 살아 원래대로 회복되게 도와주세요. 새 손톱이 나오게 해 주세요."
앱에서 택시 부르면 병원까지 수월하게 가실 텐데, 운동 삼아 버스로 가신다는 착한 사람. 아플 때는 덜 아껴도 되는데 평생 아끼는 게 몸에 밴 탓인지 요령이나 꾀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사신다.
어머니가 손을 다친 후 처음 만든 찌개가 된장찌개이다. 조수로 고추 자르고, 양파 썰고, 된장통 뚜껑 연 것은 딸의 몫, 냉장고에 보관된 쌀뜨물을 냄비에 붓고 된장 풀어 농도 조절하고 냉동실에 있던 바지락 뭉치 넣은 것은 엄마 몫! 엄마와 딸의 컬래버. 된장찌개는 어머니가 다치고 나서 느림보 거북이 딸이 요리에 가담한 첫 작품이 다.
아기 때 지저귀 갈아준 어머니 손길 기억하며 이제 딸이 보호자 되어 어머니를 씻기고 보조하고 돕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차다. 행복하다.
세월의 힘을 거스를 순 없지만, 어떤 내면으로 인생을 살아갈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늙어도 속은 부드러운 노각처럼 귀엽고 예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것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 이러고 보면 나도 쓸데없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