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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본능, 엄마 본성

결국 큰소리!

by 윤작가
다친 오른손으로 칼질해서 두부 구이 준비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에니어그램 2 유형으로 조력자형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처럼 자신보다 타인의 필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헌신적인 타입. 지난주 차량 트렁크에 오른손을 찧어도 요리 본능과 엄마 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볼수록, 같이 살수록 놀라운 사람이다. 그러나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는지 어머니와 같은 가슴 지능을 지닌 딸이지만,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이를 테면 병원에서 되도록 손을 움직이지 말고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나 같으면 손이 잘못될까 겁이 나서 많이 조심할 텐데, 어머니는 답답한 지 평소 하던 대로 다 한다. 도마에 두부 얹고 딸을 시키지 않고 직접 썰어 프라이팬에 옮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오이 껍질 벗겨 참깨와 고춧가루 뿌려 반찬 하나 뚝딱! 엉덩이 붙일 틈 없이 계속 움직인다. 여름이라 상처가 덧날까 걱정스러운 나는 지켜보기 무섭게 앉아있을 틈이 없다.


스스로 구워 먹는 첫째 조카와 기분 내키면 구워 먹는 딸과 달리 식구 입에 들어갈 찬거리 직접 준비해야 마음 놓는 그녀!

원래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잔심부름조차. 수저 놓고 상 닦고 그릇에 밥 담아 상 차리는 것부터 반찬 놓고 먹는 거 살피고 나서 설거지까지 혼자 다 하셨다. 거들려고 하면 "그냥 놔둬라, 내가 한다."라고 말씀하실 뿐.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손을 다치셨고 어머니도 어느새 세월의 힘을 감당하기 힘든 연세가 되셨다. 그런데도 루틴 때문인지 은근한 고집 때문인지 자신이 다 해야 속 시원한 것처럼 보인다.

저녁 먹고 머리를 감겨드리기로 했다. 손가락을 구부리기 힘들고 붕대 감은 상태로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어 미리 물을 받아 준비 중이었다. 잠시 후 물소리가 나서 욕실에 가니, 그 사이를 못 참고 어머니 혼자 씻으시다 물이 다친 손가락에 튀었다. 속상해서 큰소리가 나왔다.

어머니는 다치셔도 어머니고, 노쇠해져도 어머니다. 그녀의 정체성이다. 기질조차 마더 테레사라서 신세 지기 싫어하는 성정에 딸에게조차 신세 안 지려 혼자 하시다 큰일 날 뻔했다. 며칠 맞지 않던 주사를 다시 맞을 정도로.


하트 뿅뿅 엄마표 카레밥.

"어머니, 제가 보호자입니다. 이제 딸에게 의지하셔도 되세요."

두 달이고 언제든 어머니 씻기는 건 일도 아니라고 말씀드리고도 죄송스럽다. 좋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집안의 해결사처럼 살아온 세월 탓인지 문제 앞에서는 해결책만 생각하느라 다른 부분은 소홀히 넘긴 부분이 많다.

중증 환자 아니고 손가락 부상으로도 평소보다 애가 더 쓰이는데, 치매나 다른 심각한 질환으로 곁에서 간호하는 식구들과 그들의 보호를 받는 환자의 심경은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


금양체질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샤인머스캣, 선물 받아 여기서 인증! :)

페친 중에 어머니 또래의 여성분이 계신다. 그분도 바쁜 자녀 대신해서 손주들을 먹이고 돌봐주신다. 그래서일까 가끔 선물을 보내주신다.

조금 남은 카레에 물 더 붓고 카레죽에 가깝게 만든 소스를 밥에 부어 오늘 아침으로 먹은 카레밥. 그 밥이 담긴 그릇도 그분이 선물로 주셨다. 영국산 진품은 아니지만, 쿠*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물품을 살 수 있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어머니가 지난주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는 글을 읽고 샤인머스캣을 보냈다는 기별을 하셔서 우체국몰에서 흰 다리새우를 부쳤다. 자신의 입이 방정이라며 말없이 보낼 걸 하시는 모습이 소녀 같아 웃었다. 얼굴 한 번 직접 뵌 적 없는 SNS 친구인데, 벌써 오간 정이 여러 번이다. 서로 없는 형편임을 알면서도 오가는 정은 마음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뭐라도 격려하고 응원하고픈 그녀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기쁘게 받고 같이 힘내자고 나 또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형이 다르고 기질별 특징이 있다. 누군가는 말을 다정하게 하는 이가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선물에 마음을 실어 보낸다. 너무 적은 양이 아니냐고 보내놓고도 걱정하셔서 온 가족이 먹고도 넘친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이 과일을 판매하는 이도 SNS 친구라서 도움 되길 원하는 마음에 가끔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이용하기도 한다.


천사 같은 어머니가 때로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면도 갖추면 어떨까 싶다. 헌신적인 어머니 덕분에 무탈하게 살아왔지만, 그런 어머니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겨우 몸에 비누칠하고 머리 감기는 것조차 마음 편하게 신세 못 지는, 천사 같은 어머니! 눈에 안 보이는 천사보다 더 지극한 천사이다. 자신의 아픔보다 자식 입에 맛있는 거 들어가는 게 보람인 부모 마음, 내리사랑. 사라지지 않는 요리 본능, 엄마 본성. 그녀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오죽하면 팔불출 딸은 대놓고 어머니 자랑질을 늘어놓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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